사업-문화교류 많아져 수요 증가 에미레이트 주7회→10회 증편 등 직항-환승노선 승객 잡기 나서 중동노선 운영하는 대한항공 비상
중동 항공사들이 인천과 중동을 오가는 노선 운항 횟수를 대폭 늘린다. 중동과의 사업 및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는 ‘제2의 중동붐’에 따라 여객 수요가 늘어난 데다 중동을 경유해 유럽과 한국을 저렴하게 오가려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항공사들의 잇따른 증편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늘어났지만, 국적 항공사 중 유일하게 중동 노선을 운영하는 대한항공은 비상이 걸렸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중동의 대표 항공사들이 다음 달부터 운항 횟수를 늘린다. 에미레이트항공은 2월 중순부터 인천∼두바이 노선 운항 횟수를 주 7회에서 10회로, 에티하드항공은 5월부터 인천∼아부다비 노선을 주 7회에서 11회로 늘린다. 카타르항공도 4월부터 인천∼도하 노선을 주 7회에서 8회로 증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항공사인 사우디아는 지난해 초 30년 만에 인천∼리야드 직항 노선을 부활시켰다.
중동 항공사들이 잇따라 증편에 나선 건 중동을 찾는 직항 수요와 중동을 거쳐 유럽 등으로 가는 환승 수요를 잡기 위해서다. 지난해 인천에서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를 오간 여객 수는 약 98만6000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약 86만6000명)보다 약 14% 늘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 중 3분의 2 이상이 환승 수요다. 인천∼유럽 직항 노선 운임이 비싸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동 환승 노선을 이용해 유럽 등으로 가려는 것이다.
특히 중동 항공사들은 B787-9나 A350-1000 등 최신형 기종이나 A380, B777-300 등 대형 기종을 한국 노선에 주로 투입한다. 증편을 하면 좌석 공급이 대폭 늘어나면서 항공 운임이 낮아질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소비자들로서는 최신 기종을 타고 저렴한 가격으로 중동과 유럽을 오갈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셈이다.
대한항공은 증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경쟁사의 항공 운임이 내려가면 대한항공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천∼유럽을 오가는 직항 수요 일부를 중동 항공사들에 빼앗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사들이 중동 항공사들의 증편을 줄곧 반대해 왔으나,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14년 만에 UAE와 운수권 확대에 합의했다. 국토교통부 측은 “UAE의 경우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약정과 건설 수주 누적 금액 등이 총 150조 원을 넘을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다”며 “노선이 늘어난 것은 양국 간 협력이 항공 운송 분야로도 확대된 결과”라고 밝혔다. 중동과의 경제 협력이 늘어나는 만큼 중동 국가들의 증편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6월엔 정부가 한국∼쿠웨이트 운수권 증대에도 합의한 만큼 쿠웨이트 직항 노선이 개설될 가능성도 있다.
항공업계 한 임원은 “중동 국가들이 경제 협력의 대가로 증편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늘어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 항공업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