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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바다의 잡초’에서 ‘바다의 채소’로

입력 | 2024-01-23 23:48:00


김 수출의 역사는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이 좋아 수출이지, 조선을 무단 통치한 일본이 완도 어민들에게 김 양식과 가공법을 가르친 뒤 생산한 김 대부분을 수탈해 갔다. 광복 이후에도 김은 외화벌이 1등 공신이어서 “완도에서는 개도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았다. 김 최대 주산지가 지금은 고흥이다. 1978년 일본이 자국 어민을 보호하겠다며 한국산 김 수입을 막은 이후 완도의 김 양식장이 미역, 다시마, 톳으로 바뀌면서다.

▷한 세기가 훨씬 지나 김 수출은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김을 대규모로 생산해 상품화하는 나라는 한중일 3개국뿐인데, 우리가 세계 시장의 70%를 휩쓸며 압도적 1위를 자랑한다. 여의도의 218배 규모에 달하는 양식장에서는 중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김이 생산되는데 맛과 향 등 품질도 한국산이 우월하다. 특히 김 두께를 조절하는 가공 기술이 탁월해 얇은 김밥용 김은 우리만 생산할 수 있다.

▷해외에서 인기가 좋은 건 밥에 싸먹는 김보다 간식용 김이다. 김부각, 김스낵, 김칩, 김스틱처럼 형태를 다양화하고 겨자, 김치, 치킨, 아보카도 등 각양각색의 맛을 입혀 나라별 입맛을 공략했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 중동, 남미 등 120개국으로 수출 시장을 넓힐 수 있었던 힘이다. 얼마 전만 해도 서양에서 김을 먹으면 ‘검은 종이(black paper)’를 먹는다며 조롱받았지만 지금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고, 맛도 좋다’며 김 사진을 올릴 정도다.

▷그래도 서구권에서는 여전히 김을 ‘바다의 잡초(seaweed)’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선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김을 먹는다고 한다. 이를 바꿔 말하면 우리가 개척할 시장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들은 바닷가에 버려진 해조류와 달리 김은 양식장에서 정성껏 키운 ‘바다의 채소(seavegetable)’라는 점을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 김 산업과 수출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김 산업 진흥구역’도 처음 지정했다.

▷일본에선 양식 어민이 가공, 판매까지 도맡아 하는 사례가 많다. 이와 달리 한국은 양식, 마른김 생산, 수출 등으로 분업화가 잘돼 있지만 진흥구역을 만들어 한층 더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1차로 선정된 곳은 친환경 김으로 유명한 전남 신안·해남군, 충남 김 생산의 95%를 차지하는 서천군이다. 최근 서천에서는 전국 최초로 ‘마른김 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거래소를 통해 입찰 방식으로 수출 계약을 진행해 김값을 제대로 받겠다는 취지다. 첫날부터 8개국 바이어들이 몰렸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 김이 ‘바다의 반도체’라는 이름값을 하길 기대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