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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재범 우려 관리대상 4415명, 거처만 옮겨도 감시망 피한다

입력 | 2024-01-24 03:00:00

재범 위험 이영복 출소후 이상징후
경찰 눈치 못채 연쇄살인 못 막아
인권 논란에 감시 범위-수단 축소
휴대전화 끄고 버려도 파악못해




재범 우려가 높아 특별 관리 대상에 오른 강력범죄 출소자가 전국 4415명에 이르지만 경찰의 정보수집 제도가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이들이 사실상 ‘관리 사각’에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방 여주인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이달 초 구속된 연쇄살인범 이영복(57)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첫 살인 전에 경찰 관리 대상에 포함된 상태에서 휴대전화를 버리거나 거처를 옮기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고, 두 번째 살인으로 이어졌다.



● 휴대전화 버리고 거처 옮겨도 파악 못 해


2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영복은 지난해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교정당국은 이영복이 강도, 강간 등으로 총 20년 넘게 수감된 전력이 있어 재범 위험이 크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이에 경찰은 그를 ‘주요 강력범죄 출소자 등에 대한 정보수집에 관한 규칙’(경찰청 예규 제577호)에 따른 주요 강력범죄 출소자로 등재했다. 이러면 2년간(마약사범은 3년간) 경찰의 동향 파악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영복에 대한 감시망은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영복은 출소 후 주민등록 주소지가 아닌 경기 파주시의 한 고시원을 거처로 잡았지만 경찰은 알지 못했다. 2021년 관련 예규에서 ‘실제 거주지 파악’ 조항이 삭제돼 담당 경찰관이 이를 파악할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영복은 지난해 12월 29일 멀쩡히 사용하던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길에 버렸다. 상습 강력범이 범행 전 수사를 교란하기 위해 자주 벌이는 수법이지만, 이 행동도 경찰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강력범죄 출소자의 통신 기록은 평상시 수집 대상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복은 휴대전화를 버린 다음 날 고양시의 한 다방에서 60대 여성을 살해했다. 그 후 고시원으로 돌아가 인근에서 사흘간 생활하다가 이달 4일경 양주시로 옮겨 또 다른 60대 여성을 살해했고, 5일 강원 강릉시에서 붙잡혔다.




● 담당 경찰도 “보여주기식 제도”

주요 강력범죄 출소자의 동향 파악을 위한 예규는 2005년 제정됐다. △살인·방화·약취·유인으로 실형 △강도·절도·마약으로 3회 이상 실형 △조직폭력 범죄로 벌금형 이상 등을 받은 출소자가 정보수집 대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에 이런 관리 대상이 지난해 말 기준 4415명이다.

문제는 인권 침해 논란에 따라 재범 우려자에 대한 감시 범위와 수단이 줄어들면서 재범 방지, 피해 예방 등 관리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관련 지침이 완화되면서 실제 거주지나 통신 기록 조회는 물론이고, 대면 정보수집 자체가 불가능하다. 출소자 정보를 관리하는 한 경찰관은 “‘대상자의 지인에게도 (동향을) 묻지 말라’는 지침 때문에 정보수집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주요 강력범죄 출소자 1명당 정보수집 담당 경찰관이 2명뿐이고, 석 달에 한 번만 보고하도록 규정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담당자가 관련 시스템에 재범 우려자에 대해 파악도 하지 않고 ‘특이 동향 없음’이라고만 적는 경우도 많다. 정보수집 경험이 많은 한 일선 경찰서의 간부는 “현행 제도는 ‘보여주기’ 역할밖에는 못 한다”고 했다.

정보수집 대상에 성폭행범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성폭행범은 피해자가 장애인, 미성년자인 경우 등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이나 신상공개 제도에서 제외된다. 이에 강력범죄 출소자 정보수집 대상에서도 빠지게 된다.

경찰은 정보수집 기간에 재범하는 ‘또 다른 이영복’이 몇 명인지도 집계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검거된 범죄자 중 최소 121명이 2년 내에 살인을 저질렀다. 형사 전문 최형승 변호사는 “출소한 우범자 인권을 중시한 나머지 이들이 작정하고 범행하면 막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며 “정보수집 범위와 수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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