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美-유럽 직항편 부족에 韓경유 승객 작년 17배로 늘어 스페인 항공권 16%-伊 15% 급등 중국 항공권은 76% 떨어져
지난해 10월 출장차 프랑스 파리에 다녀온 30대 직장인 A 씨는 이코노미석 왕복 항공권 가격이 334만 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A 씨는 “코로나19 전에는 200만 원 안 되는 가격에 파리를 다녀왔는데 거의 2배가 됐다”며 “혼자 여행으로 가기에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을 경유하는 중국 환승객 수가 폭증하면서 주요 지역의 항공권 가격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에서 관광 및 출장지로 인기가 많은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직항편이 제한돼 있다 보니 한국을 거쳐 가려는 환승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수요 회복에 따른 기저 효과와 물가 상승 탓도 크지만 중국발 수요까지 몰리며 항공권 가격이 더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본보가 여행 플랫폼 호텔스컴바인에 의뢰해 국제선 항공권 가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에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로 향하는 항공권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16%, 15%, 11% 상승했다. 영국, 미국은 각각 2%, 1% 올랐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1년 만에 10% 이상 가격이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아직 중국발 미주, 유럽행 직항편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데다 질이 높은 한국 국적기를 선호하는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을 경유한 중국 환승객 수는 69만7697명으로 전년 대비 1647.1% 증가했다. 2022년 3만9935명에서 무려 17배가 된 것이다. 모든 국가를 통틀어 인천공항을 거쳐간 전체 환승객 수는 141.1% 늘었고, 증가율로는 중국이 가장 높았다. 통계는 중국에서 출발해 인천을 거쳤거나, 다른 나라에서 인천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간 여객 모두를 포함한다. 또 예를 들어 중국에서 인천, 인천에서 프랑스로 갔다면 중국과 프랑스 모두 환승국으로 계산된다.
중국에서 출발해 인천을 경유하거나, 인천을 경유해 중국으로 들어간 대표적인 나라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였다. 환승객 수 증가율이 각각 337.5%, 351.0%로 가장 높았다. 프랑스(149.7%), 미국(120.1%)이 뒤를 이었다.
중국은 기존 주 48회로 제한했던 중-미 간 직항 운행 횟수를 지난해 말부터 주 70회로 늘렸지만 코로나19 전인 주 330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중 간 외교·무역 갈등 심화로 비행편 운항이 좀처럼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중국-미국 직항이 점차 늘면서 환승객이 줄고 한국 항공권 가격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코로나19 이전보다 물가도 오르고, 인건비도 올라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