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파리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파리지앵’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순위를 설문했는데, 뵈프 부르기뇽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버터와 크림이 들어간 송아지 고기 스튜 블랑케트 드 보와 스테이크, 감자튀김이 그 뒤를 이었다. 프랑스의 겨울은 좀처럼 눈이 오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리는 비교적 따스한 날씨인데,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눈이 오는 등 여느 때보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 프랑스인들도 어쩔 수 없이 따끈한 스튜를 찾나 보다.
내가 뵈프 부르기뇽을 처음 접한 것은 2009년경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유명한 노라 에프론 감독의 유작이 된 이 영화는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인데, 줄리아 차일드가 쓴 요리책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이 원작이다. 외교관 남편과 함께 파리에 온 줄리아(메릴 스트립)는 요리학교에 다니며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여 전설적인 셰프가 되고, 뉴욕의 요리 블로거(에이미 애덤스)는 줄리아의 요리책을 보며 365일 동안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는 내용의 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뵈프 부르기뇽을 보고 무슨 맛일까 궁금해 찾아서 먹어 보고 난 뒤 나 역시 사랑에 빠지게 됐다.
퍽 추웠던 지난주를 보내면서 뵈프 부르기뇽이 간절해 1686년에 문을 연 르 프로코프 레스토랑을 찾았다.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생도 시절 여기에서 밥을 먹고 밥값이 없어 두고 갔다는 모자를 전시하고 있는 식당이다. 파리 최초의 커피 하우스로, 디드로, 볼테르 같은 백과사전파 사상가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관광객이 많아 자주 가지는 않지만 뵈프 부르기뇽이 생각날 때면 이곳과 마레지구 피카소박물관 근처에 있는 르 카페 데 뮤제를 찾는다.
뵈프 부르기뇽은 조리법이 간단해서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다. 파리의 슈퍼마켓에서 랑그도크 루시옹이나 카오에서 생산된 와인 2병과 쇠고기 사태, 약간의 채소만 준비하면 된다. 사태를 6∼7cm로 큼지막하게 자른 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당근, 양파, 양송이버섯, 베이컨을 썰어 달군 팬에 볶다가 쇠고기를 넣어 캐러멜라이징을 한다. 그 다음 당근, 양송이버섯, 마늘과 버터를 넣고 볶고 레드 와인과 약간의 치킨스톡, 월계수 잎을 넣고 무쇠 냄비의 뚜껑을 덮어 중불에 1시간 정도 끓이면 끝이다. 고기와 와인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싸니 20∼30유로만 투자해도 꽤 만족할 만한 맛을 낼 수 있다. 고기가 연해지려면 중불로 1시간 이상 푹 끓여야 하고 바닥이 타지 않는 무쇠 냄비로 하는 것이 좋지만 없을 땐 일반 냄비로도 가능하니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시라. 어쩌면 에펠탑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적인 순간 못지않게 내 손으로 만든 뵈프 부르기뇽을 먹으며 파리에서 보낸 시간이 사는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