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빙상장 하나 없는 나이지리아, 강릉서 컬링 스톤 들다

입력 | 2024-01-25 03:00:00

강원 청소년올림픽 집념의 도전
컬링장은 물론 아이스링크 없어… 특수 매트 위에서 ‘플로어 컬링’ 훈련
빙판서 넘어지고 스톤 컨트롤 애먹어
7전 전패 불구 상대팀에 “굿게임”



나이지리아는 2024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 컬링 종목에 출전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나이지리아 컬링 대표팀이 실제로 얼음 위에서 경기를 치른 건 이번 대회가 두 번째라고 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나이지리아 선수(오른쪽)가 왼손에 지지대를 쥐고 있는 것도 얼음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아직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컬링연맹 제공


“얼음이 얼지 않는 나라 사람에게는 ‘미친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나이지리아에 컬링을 꼭 들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프리카 나라 나이지리아에 컬링 대표팀이 생긴 건 실라 대니얼 씨(20)의 이 ‘미친 생각’ 덕분이었다. 스포츠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고향 나이지리아와 독일을 오가면서 자란 실라 씨는 초등학생 시절 독일에서 클럽 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다. 그 전에도 스노보드, 아이스스케이팅 같은 겨울 스포츠를 접했지만 눈과 얼음이 없는 나이지리아에서는 불가능한 종목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컬링은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딸의 집요한 설득에 아버지 다몰라 대니얼 씨(54)도 행동에 나섰다. 2017년 나이지리아컬링연맹을 설립해 회장을 맡은 그는 전국 학교를 돌며 컬링을 배우겠다는 아이들을 모았다. 이로부터 7년이 지나 실라 씨의 동생인 로이(17)를 비롯해 굿뉴스 찰스(17), 은코요 오쿠(16), 올루와니 미피세 왈레아데오군(16), 파티우 단몰라(17) 등 5명이 나이지리아 대표로 2024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에 참가했다. 실라 씨도 코치로 이름을 올렸다. 나이지리아는 성인과 청소년 대회를 통틀어 올림픽 컬링에 출전한 최초의 아프리카 국가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자국 내에서 얼음이 아닌 미끄러운 매트를 깔아 놓고 훈련할 때의 모습. 나이지리아컬링연맹 제공 

나이지리아에는 컬링장은 물론이고 아이스링크도 없다. 이들은 얼음 대신 미끄러운 소재로 만든 매트 위에서 ‘플로어 컬링’을 하며 실력을 길렀다. 이들이 얼음 위에서 경기를 치른 건 2022년 12월 핀란드에서 열린 B그룹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가 처음이었다.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청소년올림픽이 두 번째다.

청소년올림픽이 1년도 넘게 남은 시점에 대회 출전권을 따냈지만 한국으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연맹 예산이 부족해 참가비를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간 기부 사이트인 ‘고 펀드 미’를 통해 모금에 나섰지만 그마저 부족했다. 결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강릉컬링센터 얼음판에 설 수 있었다.

얼음 위에선 모든 게 달랐다. 지지대 없이 얼음 위에 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당연히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스톤을 가져다 놓는 데도 애를 먹었다. 이들은 6점을 따는 동안 133점을 내주며 이번 대회 믹스트 컬링 예선을 7전 전패로 마감했다. 그래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상대 팀 선수들에게 “굿 게임”이라고 손을 내밀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몰라는 24일 경기를 마친 뒤 “첫 경기부터 세 번이나 넘어졌다. 움직이면서 빗질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며 “그래도 배울 수 있어 좋다. 곤경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오쿠는 “(경기 후반이 되면) 얼음이 녹아 스톤 속도가 빨라진다. 스톤을 던지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경험이 많지 않아 스톤이 목표 지점을 지나칠 때가 많았다”면서 “그래도 대회 기간 실력이 많이 늘었다. 후회는 없다”고 했다.

실라 코치는 “어제까지는 선수들이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얼음판에서 넘어졌는데 오늘은 한 번도 안 넘어지더라. 넘어질 때마다 다들 씩씩하게 일어나 경기하는 모습이 대견했다”며 “청소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들이 너무 부럽다. 난 이제 나이가 많아 못 나온다”며 웃었다. 대니얼 회장도 “우리 선수들은 이제 막 ‘진짜 컬링’에 익숙해지는 중”이라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길을 찾고 어느 곳에서나 적응할 수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나이지리아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패배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눈이 바닥에 굳어 생긴 ‘진짜 얼음’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이들은 26일부터 남녀 선수 한 명씩 짝을 이뤄 경기하는 믹스더블에 출전해 다시 한번 나이지리아 컬링의 ‘쿨러닝’에 도전한다.



강릉=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