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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게임은 위험하다’, 소규모 프로젝트로 체질 개선하는 게임업계[조영준의 게임인더스트리]

입력 | 2024-01-26 11:00:00


코로나 시절 역대급 성과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인수 정책을 펼쳤던 게임업계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코로나 완화와 전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매출은 축소되면서,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영업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대폭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넥슨, 크래프톤 등 든든한 해외 매출을 가지고 있는 몇몇 회사를 제외하면 2023년에 대부분 영업적자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실적 악화로 대부분의 게임주가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 출처=네이버

당시에는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인력을 충원했지만, 이제는 늘어난 인건비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는 곳도 생기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매출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없으니, 일단 인원 감축으로 비용을 낮춰서 영업이익을 늘려보겠다는 전략입니다.

해외에서는 메타, 유니티, 트위치 등 대형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국내 게임업계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될 분위기입니다. 최근 엔씨소프트가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한다고 발표했고, 컴투스, 넷마블 등도 메타버스 사업 인력을 대폭 감원한다고 발표했네요.

메타버스 사업을 축소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처=게임동아

이처럼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게임 개발 방향성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MMORPG 등 회사의 간판이 될만한 대형 게임 위주였지만, 이제는 대형 게임을 줄이고, 소규모 프로젝트를 늘리는 ‘빅 앤 리틀’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딘 발할라 라이징’, ‘나이트크로우’ 등 대형 게임을 성공시키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 수 있기는 하나, 실패하면 회사가 사라질 정도로 큰 피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지난해 초 플레이스테이션5(PS5) 기대작으로 꼽혔던 ‘포스포큰’이 실패하면서 개발사인 루미너스프로덕션이 해체됐고, 더 데이 비포를 개발한 러시아 개발사 에프엔나스틱은 게임 얼리액세스 시작 4일 만에 회사 폐업을 발표해서 큰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포스포큰’은 코로나19로 인해 출시일이 두 번이나 연기되며 개발비만 1000억 원이 넘게 들었지만, 판매량은 100만장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흥행 실패로 개발사가 사라진 포스포큰 / 출처=게임동아

국내에서는 최근에 ‘창세기전 : 회색의 잔영’을 개발한 레그스튜디오가 판매량 부진으로 인해 출시 한달도 안돼 해체됐고, 데브시스터즈도 신규 IP ‘브릭시티’가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인원 감축을 발표했습니다. 게임을 유지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빨리 포기해 추가 비용을 아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적은 인원으로 개발한 소규모 프로젝트임에도 대형 프로젝트 못지 않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소규모 프로젝트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면서 국산 콘솔 게임 시장 부활을 예고한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25명 정도의 작은 개발팀에서 개발한 작품이고, 방치형 게임 열풍을 일으킨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키우기’도 20~30명 정도의 개발 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데임브더 다이버 메인 이미지 / 출처=넥슨

대형 MMORPG의 경우 100~200명에 달하는 인원이 투입되는 게 일반적이니, 투자금 대비 몇배의 성과를 낸 것이죠. 최근 스팀으로 발매돼 3일 만에 4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된 ‘팔월드’의 개발사 포켓웨어도 전체 직원 수가 40명 정도입니다.

이처럼 소규모 프로젝트가 확산이 되면서, 회사 운영 체제를 소규모 프로젝트에 맞춰 새롭게 구성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넥슨은 기존 넥슨 게임과 다른 개성있는 게임 개발을 위해 민트로켓이라는 서브 브랜드를 만들어서, 이미 글로벌 흥행작으로 자리잡은 ‘데이브 더 다이버’에 이어 ‘낙원’, ‘웨이크러너’ 등의 신작을 준비 중입니다.

크래프톤 역시 PUBG 배틀그라운드 IP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수의 독립 스튜디오 중심으로 회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PUBG 배틀그라운드를 맡고 있는 펍지 스튜디오와 ‘눈물을 마시는 새’ 프로젝트를 위한 크래프톤 몬트리올 스튜디오 등 벌써 12개의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사내 직원들의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더 크리에이티브’ 제도도 운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더 크리에이티브’ 제도는 30명 이하의 소규모 개발 인원으로, 1년 반 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게 되며, 초기 창업 비용이 지원돼, 채용, 개발, 운영의 자율권을 가진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독립스튜디오 체제로 변화를 시작한 크래프톤 / 출처=크레프톤

물론 현재까지 개발비가 20억 달러(한화 약 2조 7000억 원) 정도 들어간 것으로 추측되는 GTA6 등 초대형 게임들도 여전히 존재하긴 합니다. 다만, 그만큼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극히 일부 게임에만 해당되는 얘기이고, 대다수의 게임사들은 개발비용을 낮추기 위해 AI 활용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몇백 억, 몇천 억 이 투입된 대작 게임’이라는 홍보 문구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