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출처’ 이론 검증 나선 과학계
‘의식의 발원지’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 중 하나인 통합정보이론(IIT)에서 의식이 발생하는 부분으로 지목하는 뇌의 전두엽 피질이 어두운 색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인간의 마음은 사람에게 있는가 아니면 뇌에 있는가.” 의식의 발원지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이론들을 검증하는 작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6년 전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 미국 앨런뇌과학연구소 소장과 철학자인 데이비드 차머스 미국 뉴욕대 교수의 내기로부터 시작된 의식의 발원을 찾는 과학계와 철학계의 오랜 연구가 속속 성과를 낼 예정이다. 의식을 오로지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니면 뇌의 작용을 넘어서는 어떠한 주관적인 작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지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인공지능(AI)의 인간성을 판별하거나, 의학에서 환자의 의식이 유지되고 있는지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팽팽히 맞서는 ‘의식의 기원’ 이론
의식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현재 가장 유력한 두 가지 이론은 통합정보이론(IIT)과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GNWT)이다.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을 뇌 부위에서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 연결 메커니즘 구조’로 본다. 의식의 발원지를 감각처리 영역이 모여 있는 뇌 뒤쪽의 후측피질에서 찾는다.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은 의식이 감각기관에서 발생한 신호가 뇌 영역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의식의 발원지를 사고력과 주의력을 담당하는 뇌의 앞쪽인 전두엽 피질로 지목한다.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을 신경들이 연결된 구조로 바라보기 때문에 의식을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지 않는다. 감각을 처리하는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동물 등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우주만물에 정신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범심론을 지지할 수 있다.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은 뇌가 감각 신호를 선택하고 정보로 만들어 뇌의 분리된 작업영역에 송출(방송)한다는 이론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어떠한 주관성이 작용하며 뇌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발(創發)적 활동을 수행한다고 본다.
● 첫 번째 검증 실험에선 통합정보이론 우세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특정한 판단을 내릴 때 뇌의 신호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인했다. 첫 번째 그룹은 2장의 사진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작업을 수행했으며 두 번째 그룹은 아무런 작업도 수행하지 않았다. 각 그룹의 뇌 변화를 관찰한 결과 사진을 인식할 때 참가자들은 뇌의 뒤쪽에서 신호가 활성화됐다.
뇌의 신호가 기록된 시점도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보다 통합정보이론을 더 강하게 뒷받침했다. 참가자들이 사진을 보는 동안 뇌의 후측 피질에선 지속적으로 신호가 감지됐다. 반면 뇌의 앞쪽에선 이미지를 보는 순간 강한 신호가 순간적으로 발생했다가 사그라드는 모습이 관측됐다.
● 의식적 지각활동 중엔 전두엽 활성화
학계는 첫 번째 실험 결과만으로 통합정보이론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할 수 없다고 본다. 실험 참가자들이 이미지를 보며 의식적인 지각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뇌 신경세포의 활성화 움직임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두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두 번째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연구팀은 비디오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를 올해 공개할 예정이다.
의식의 발원지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이론들에 대한 검증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의식이란 감각에 의해 지각된 것을 고차원적인 관점에서 해석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고차이론(HOT)과 의식이 정보에 대한 반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반복처리이론(RPT) 등이다.
학계에선 의식의 발원지를 찾고 있는 여러 이론들의 ‘적대적 협업’이 활발한 만큼 조만간 인류가 의식의 비밀을 푸는 데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통합정보이론과 전역신경작업공간이론의 비교검증을 실시하는 연구 외에 미국 뉴욕대 연구진은 고차이론과 반복처리이론의 두 이론을 함께 분석하고 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