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계 거목 시인 정호승 일상적 풍경이 시가 되기까지 직접 쓴 작품 68편 뒷이야기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정호승 지음/568쪽·1만8000원·비채
어릴 적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로 시작하는 청마 유치환의 ‘바위’를 읽으면서 엉뚱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청마의 마음을 흔든 바위가 어떤 바위일까’ 정말 궁금했는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서는 시험에 나오는, 알고 싶지 않은 지식만 가르쳐줬다. 만약 그 바위가 실제로 있어서 직접 볼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등단 50년이 넘은 시인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시인 정호승이 자신의 시 68편과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한데 묶은 일명 ‘시가 있는 산문집’을 펴냈다. 자신의 대표작과 그 시를 쓸 당시의 사연을 함께 소개한 내용이다.
“…국화빵을 굽는 초라한 노점 하나가 집 앞 횡단보도 부근에 들어선 걸 보고도 늘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그날은 비닐 포장 사이로 국화빵을 먹고 있는 초라한 주인 사내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아, 저녁 대신 자기가 구운 국화빵을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국화빵을 사 먹는 이유’ 중)
흔히 보는 시 해설이나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시가 나오기까지의 뒷이야기에 가깝다. 혹자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개인사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시를 공부하거나 시에 관심이 있는, 나도 한번 시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보고 겪는 일상에서 시인이 어떻게 시를 만들어내는지,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떻게 이렇게 주옥같은 단어와 문장을 뽑아내는지 가르쳐주는 훌륭한 참고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