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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잘못 걸리면 멸종… 곰팡이, 알고 보면 치명적 파괴자

입력 | 2024-01-27 01:40:00

인체에 침투해 심장-눈 등 손상
‘그로미셸 바나나’ 멸종시키고, 러시아 우주정거장 폐기 사례도
“곰팡이 팬데믹 미리 대비해야”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에밀리 모노선 지음·김희봉 옮김/328쪽·2만2000원·반니



현미경으로 본 ‘아스페르길루스 니게르’ 곰팡이. 저자는 “여러 곰팡이가 자연에서 생물종을 멸종 위기에 빠뜨리는 ‘은밀한 파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니 제공


누구나 한 번쯤은 상온에 보관한 음식에 핀 곰팡이를 보고 난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불쾌한 기분만 들 뿐, 음식을 버리면 곰팡이 퇴치는 간단히 끝난다. 이처럼 생활에 약간의 불편을 초래하는 이 곰팡이가 사실은 몇몇 생물종의 멸종을 부른 ‘파괴자’였음을 안다면 곰팡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을까.

세계적인 독성학자인 저자는 여러 곰팡이가 자연에서 어떻게 생명을 멸종 위기에 빠뜨렸는지를 추적한다. 백송부터 개구리, 도롱뇽, 박쥐 등 곰팡이가 피해를 입힌 종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숙주 없이도 흙 속에서 여러 해를 견디는 곰팡이의 놀라운 생명력은 숙주를 멸망에까지 몰아넣는다. 예컨대 항아리 곰팡이는 개구리 피부의 영양분을 흡수해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곰팡이 ‘칸디다 아우리스’는 일본 환자의 귀에서 발견돼 ‘귀 곰팡이’라는 별명이 붙은 뒤 수많은 발병 사례가 확인됐다. 이 곰팡이는 사람의 혈액에 침투할 경우 심장, 눈, 뇌 등에 치명적 손상을 일으킨다. 저자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환자들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시기에 병이 널리 확산됐다”고 분석한다.

곰팡이는 먹거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예컨대 바나나에는 수천 가지 품종이 있지만, 우리가 먹는 품종은 대부분이 ‘캐번디시’다. 더 맛이 좋다고 알려진 ‘그로미셸’은 변종 파나마병이라고 알려진 ‘쿠벤세’ 곰팡이에 의해 멸종됐다. 문제는 또 다른 변종 곰팡이가 세계 곳곳의 캐번디시 농장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바나나 산업이 무너지면 농장 주인, 노동자, 포장 작업자, 소비자 모두에게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밀, 쌀, 옥수수 등 식량 전반이 곰팡이의 위협을 받는 가운데 저자는 “식량 작물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테러가 발생하고 정치, 경제, 사회에 연쇄적으로 거대한 충격이 가해진다. 작물을 공격하는 곰팡이는 결코 공상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곰팡이는 우주를 오염시킬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1998년 러시아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곰팡이가 퍼져 정거장이 폐기된 사례와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곰팡이가 우주 바깥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우주의 진공과 극한의 온도에도 살아남을 곰팡이에 대해 “현재 행성 보호 지침은 곰팡이 포자를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책은 그동안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곰팡이의 낯선 면을 다룬다. 구체적인 연구 근거를 내세우며 곰팡이의 지독하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을 세세히 그려낸다. 현상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곰팡이로 인한 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등의 해결책도 제시한다. 코로나19를 겪은 인류는 이제 작고 은밀한 파괴자가 초래할 수 있는 ‘곰팡이 팬데믹’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