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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희창]절망적금 된 희망적금… 그 이유 함께 따져봐야

입력 | 2024-01-26 23:42:00

박희창 경제부 차장


그에게 ‘청년희망적금’은 희망 한 조각이 됐다. 올해 서른한 살 직장인 A 씨는 “설렌다”고 했다. 다음 달 23일이면 매달 50만 원씩 2년을 부은 적금이 만기가 된다. 정부 지원금까지 더해져 난생처음으로 1300만 원이 넘는 목돈이 통장에 들어온다. 그가 가입한 희망적금은 은행 기본금리에 정부가 주는 장려금과 비과세 혜택을 합쳐 연 최고 10%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원금에 얹어지는 이자는 111만 원으로, 시중은행의 연리 3%짜리 적금보다 75만 원가량 더 많다.

적금을 들었던 모든 청년들이 희망을 찾은 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청년희망적금 중도해지자는 86만1309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출시 당시 2주간 가입한 이들이 약 290만 명이었다. 10명 중 3명은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깬 셈이다. ‘출생연도별 신청 5부제’까지 운영했는데도 첫날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이 먹통이 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던 걸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높은 중도해지율이다.

7명과 3명의 선택이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A 씨는 “1시간 반 넘게 걸리지만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한 게 컸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가 받는 월급은 2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회사 근처에 집을 얻었다면 월세로만 최소 50만 원을 내야 했다. 지난해 5월 적금을 깬 20대 B 씨는 “적게 벌 때는 한 달에 120만 원을 버는데 주거비로만 80만 원 가까이 나가니 다달이 50만 원씩 적금을 넣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부모 찬스’를 쓴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고물가까지 겹쳐 본인 벌이로는 생활비도 빠듯하니 아버지가 납입일에 맞춰 자녀의 통장에 매달 50만 원씩을 입금해줬다는 것이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금수저’는 쓸 건 쓰면서 혜택까지 챙긴 셈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청년절망적금’이라는 말을 다시 불러냈다. 이 적금은 연봉이 3600만 원 이하인 청년만 가입할 수 있었다. 연봉이 낮으면 저금할 수 있는 여력이 없고, ‘흙수저’라도 연봉이 높으면 가입이 안 돼 2년 전에도 희망 대신 절망을 넣어 부르기도 했다.

청년희망적금이 흥행에 성공하자 이 정부도 희망적금의 확장판인 ‘청년도약계좌’를 내놨다. 5년 만기인 이 상품은 매달 70만 원씩을 넣으면 최대 5000만 원가량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인기는 희망적금에 못 미쳤다. 지난해 6월부터 6개월간 계좌를 개설한 청년은 51만 명으로 정부 예상치의 17%에 그쳤다. 희망적금 만기를 앞둔 이들 중 도약계좌로 목돈 만들기를 이어가겠다는 청년이 신청 첫날 6만 명이 넘었지만 “5년 동안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데 어찌 갈아 타냐”는 말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잇달아 증시 부양책을 내놓으며 증권시장이 “누구나 자기 능력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가 된다”고 했다. 2년 전 희망적금 최초 가입자가 정부 예상보다 약 8배 많았던 건 2030세대가 기회의 사다리로 삼았던 주식과 코인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 컸다. 주식과 코인 투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돈을 잃을 위험도 늘 안고 있다. 청년들이 이들 투자 대신 위험이 전혀 없는 적금을 선택했는데도 보장된 이자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던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 수 있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