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차장
그에게 ‘청년희망적금’은 희망 한 조각이 됐다. 올해 서른한 살 직장인 A 씨는 “설렌다”고 했다. 다음 달 23일이면 매달 50만 원씩 2년을 부은 적금이 만기가 된다. 정부 지원금까지 더해져 난생처음으로 1300만 원이 넘는 목돈이 통장에 들어온다. 그가 가입한 희망적금은 은행 기본금리에 정부가 주는 장려금과 비과세 혜택을 합쳐 연 최고 10%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원금에 얹어지는 이자는 111만 원으로, 시중은행의 연리 3%짜리 적금보다 75만 원가량 더 많다.
적금을 들었던 모든 청년들이 희망을 찾은 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청년희망적금 중도해지자는 86만1309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출시 당시 2주간 가입한 이들이 약 290만 명이었다. 10명 중 3명은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깬 셈이다. ‘출생연도별 신청 5부제’까지 운영했는데도 첫날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이 먹통이 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던 걸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높은 중도해지율이다.
7명과 3명의 선택이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A 씨는 “1시간 반 넘게 걸리지만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한 게 컸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그가 받는 월급은 2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회사 근처에 집을 얻었다면 월세로만 최소 50만 원을 내야 했다. 지난해 5월 적금을 깬 20대 B 씨는 “적게 벌 때는 한 달에 120만 원을 버는데 주거비로만 80만 원 가까이 나가니 다달이 50만 원씩 적금을 넣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청년희망적금이 흥행에 성공하자 이 정부도 희망적금의 확장판인 ‘청년도약계좌’를 내놨다. 5년 만기인 이 상품은 매달 70만 원씩을 넣으면 최대 5000만 원가량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인기는 희망적금에 못 미쳤다. 지난해 6월부터 6개월간 계좌를 개설한 청년은 51만 명으로 정부 예상치의 17%에 그쳤다. 희망적금 만기를 앞둔 이들 중 도약계좌로 목돈 만들기를 이어가겠다는 청년이 신청 첫날 6만 명이 넘었지만 “5년 동안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데 어찌 갈아 타냐”는 말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잇달아 증시 부양책을 내놓으며 증권시장이 “누구나 자기 능력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가 된다”고 했다. 2년 전 희망적금 최초 가입자가 정부 예상보다 약 8배 많았던 건 2030세대가 기회의 사다리로 삼았던 주식과 코인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 컸다. 주식과 코인 투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돈을 잃을 위험도 늘 안고 있다. 청년들이 이들 투자 대신 위험이 전혀 없는 적금을 선택했는데도 보장된 이자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던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 수 있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