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여론조사-후보 홍보 전화 유권자들 ‘고통’… 수신 차단도
“연락 좀 그만하라는 항의 전화가 하루에 100통 넘게 온다.”(국민의힘 영남 지역 의원실 보좌진)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며 항의하는 분들에게 ‘수신 차단’ 방법을 알려주도록 캠프 업무 매뉴얼을 추가했다.”(더불어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실 보좌진)
22대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화 폭탄’에 고통을 호소하며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공천을 위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전화 여론조사가 본격화되자 개별 후보들의 지지 호소 전화까지 겹치면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경기 지역에 캠프를 꾸린 민주당 현역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1년 사이 모은 지역구 유권자 연락처가 4만 개가 넘는다”며 “20명 이상 단체 문자 횟수는 제한이 있다 보니 20명씩 끊어서 4만 명에게 매주 문자를 돌린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불쾌감을 느낀 유권자들의 항의가 증가했다. 경기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의 한 원외 후보는 “시장을 돌다 보면 ‘전화 좀 그만 오게 하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있다”며 “머쓱하지만 어떻게든 이름을 알리려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후보적합도 설문’ 지역구별 6만명에 전화… “문자발송 담당 따로 두고 하루종일 돌려”
여야, 총선앞 ‘전화 폭탄’
최근 총선 관련 설문조사나 각 후보의 지지 호소 전화가 늘어난 이유는 여야가 본격적으로 공천을 위한 지지도 조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실시 중인 각 지역구 후보별 ‘적합도 조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경우 공천 배제(컷오프)의 근거가 될 수 있다. 22일부터 25일까지 실시한 국민의힘 ‘컷오프 설문조사’도 현역 지역구 의원 교체 지수를 평가하기 위한 작업이다.여기에 각 당이 진행하는 설문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지역구 예비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사말을 녹음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뿌려대면서 ‘전화 공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진 의원실의 경우 5만∼10만 명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역시 원외인사는 8000여 명, 현역 의원은 수만 명의 연락처를 홍보용으로 확보해 둔다고 한다.
‘전화 공해’를 야기하는 꼼수도 많다. 공직선거법상 20명 이상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횟수가 8번으로 제한돼 있다 보니 20명 미만씩 끊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민주당의 한 현역 의원실 관계자는 “문자메시지 발송 담당을 아예 지정해 하루종일 문자만 돌리게 한다”며 “4만 명에게 보내는데 보통 3, 4시간 걸린다”고 했다. 한 선거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음성 녹음 전화는 횟수 제한이 없어 상대적으로 인지도 낮은 후보들은 더욱 열을 올리는 홍보방법”이라며 “현재까지 등록된 예비후보자가 1300여 명인데, 이들이 1만 명씩에게만 전화를 돌린다고 해도 1300만 통”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20년 차 보좌진은 “선거철 문자메시지나 전화 홍보가 ‘하고도 욕 먹는 짓’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면서도 “최근 들어 선거운동과 관련한 제약이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것보다는 하던 것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살포하는 방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은 사전 여론조사 단계이지만 본격 당내 경선이 시작되는 2월 말부터는 더욱 치열하게 전화와 문자를 돌려댈 것”이라며 “지역구 주민들의 성토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