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30년 지기 인생 깐부 가수 진시몬- ‘녹색지대’ 곽창선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가수 진시몬(왼쪽)과 ‘녹색지대’ 곽창선. 느리게 걷지만 마주 보고, 앞을 보고, 주변도 살피고 뚜벅뚜벅 가자는 두 사람. 그러면 매일 ‘V’ 자를 손으로 만들어 보일 것 같다는 기대에 차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r@donga.com
‘사랑을 할거야’, ‘준비 없는 이별’, ‘내가 지켜줄게’ 등의 히트곡으로 1990년대 중후반 발라드 가요계를 접수한 남성 2인조 그룹 ‘녹색지대’의 감미로운 미성 보컬 곽창선(54)에게 진시몬(55)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세상으로 다시 꺼내준 존재다.
‘낯설은 아쉬움’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진시몬. KBS 가요톱10 캡쳐
1990년에는 연말 KBS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 후보로도 올랐다. KBS 가요대상 캡쳐
1990년 KBS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까지 올랐던 그는 어깨의 힘을 일찍 뺐다. 공백기가 길어지고 이름이 잊혀질 즈음, 반짝 인기의 기억을 지우고 어떻게든 평범하게 제주도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청년으로 살아보려고 애썼다. 커피숍에서 일해 보고, 학교용 칫솔 살균기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았지만 식당을 잘 해서 빚을 갚았다. 그러면서 어렵게 소속사를 찾아 들어가 이런저런 잡일을 하면서 노래의 끈을 놓치 않았다. 우연한 권유로 트로트 방향 전환을 했고, 사람 발품을 아주 잘 팔아 좋은 노래를 받았다.
흔히 연예인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진시몬과는 관계없어 보인다. 만나보면 세상에 참 빠삭하다. 그런 진시몬이 30년 가까이 곽창선을 옆에 두고 있다. 곽창선의 인생을 지켜보다가 이제는 깊숙히 들어가 아예 자기 인생과 겹치려고 한다.
1994년 권선국(왼쪽)과 ‘녹색지대’로 데뷔한 곽창선은 1년여 만에 1집 타이틀곡인 ‘사랑을 할거야’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여러 차례 석권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KBS 가요톱10 캡쳐
“저는 길어야 강원도에 2~3년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나갔네요. 후회가 많았습니다.”
-존재감을 잃었던 동생이 어떠셨는지요.
“강원도 가기 전까지 창선이는 저랑 찰싹 붙어 있었어요. 내가 이사를 가면 창선이도 따라왔죠. 펜션 사업을 하면서 나중에 동업자들이 하나둘씩 빠지더니, 창선이가 오너가 되니까 짐을 혼자 전부 떠안았어요. 펜션은 늘 잘 되리라는 법이 없죠. 금리는 점점 올라가 대출 상환 부담은 커지고…. 대출이 1금융권만 있는 게 아니라 2금융권에도 있어요. 한 달에 갚아야할 이자만 800만 원이더라고요. 성수기 때는 감당이 되는데, 나머지 시기는 힘들죠. 제가 펜션에 가서 손님맞이도 돕고 했지만,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대안없이 버텨야 했으니….”
-형이라면 어떻게든 정리를 하지 않았을까요.
“사업 몸집을 줄였죠. 그런데 창선이는 여러 일이 있었어요. 가정사도 있었고,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희망의 빛이라는 게 보이지 않을 때였어요.”
형은 어느 순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펜션에서 동생을 꺼내는 게 맞았다. 싫든 좋든 곽창선은 노래를 해야 했고, 무대에서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곽창선에게는 형 진시몬이 걸어왔던 인생 발자취가 곧 배움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형의 인생 스토리가 들을 때마다 새롭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노래를 아예 쉬고 10년 넘게 펜션 일만 하니까 형이 저를 빼낼 결심을 하더라고요. 그 때 저도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형한테 말한 적이 있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열정이 없다’는 얘기를 했어요. 형이 그 얘기를 듣고 한 말이 ‘같이 나랑 그냥 노래해보자’였어요. 그러면서 내미는 노래가 ‘내려놓기’였죠.”
<내려놓기>(2023년 3월 발표)
작사-진시몬, 이동철
작곡-이동철
멈춰야만 볼 수가 있어
눈감아야만 들을 수 있어
왜 우리는 바쁘게만 살았나
오늘 잠시만 내려놓기를
뛰어가면 잡을 것만 같았고
쉬어가면 뺏길 것만 같았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모든 것들을
이제 내 안에서 찾았네
바람이 부는 해변에 앉아
지나온 날을 떠올려 본다
힘겨웠지만 이렇게 살아와 줬던
내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이하 줄임)-결국 노래로 박힌 동생을 빼내셨군요.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겠다 싶었죠. 노래하고 싶은 창선이의 처지가 결정적이었죠. 바쁘게만 살지 말라는 노래인데, 동생한테 딱 맞잖아요. 노래를 만들려고 할 때 원래 ‘수와 진’ 형들한테 주려던 거였어요. 그런데 자기들이 부르겠다는 말만 하고 결정을 안 해서 발표가 늦어졌어요, 6년이나. 안 되겠다 싶어서 창선이한테 곡을 보내줬더니 만족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듀엣으로 ‘개미 두 마리’를 만들고….”
-‘개미 두 마리’?
“일하는 개미 ‘1+1’이라는 거죠. 저는 파주 사니까 ‘파주 개미’고, 쟤는 둔내에 사니 ‘둔내 개미’인데 붙어서 노래나 열심히 해보자고. 그런데 ‘수와 진’ 형들도 나중에 ‘내려놓기’를 부르고 다닌다는 거예요. 하하.”
“형, 나는 ‘내려놓기’를 만들었다기에 형이 나보고 ‘펜션을 내려놔라’고 하는 엄포로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내심 좋았어요.”
-처지가 완전히 대비됐겠네요.
“제대하고 너무 불안한 거예요. 제주도 촌놈이 먹고 살 길이 안 보이더라고요. 1995년도인가, (김)범룡이 형께서 다시 저를 거둬주셨는데, 얼마 동안 소속사 사무실에서 잡일을 했어요. 오전 9시까지 사무실 나와서 청소하고, 먹을 물도 채워놓고 그랬죠. 당시에는 정수기가 없을 때였어요. 사무실 옆 다방에서 보리차를 시켰어요. 물을 끊여 먹을 때니까. 다방 아가씨가 물을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주면 청소하다 말고 노래 한 곡 뽑아 줬죠. 하하.”
“형, 저는 그 때는 너무 바빠서 사무실에 거의 안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앨범 활동을 하면서도 매일 저녁에 서울, 수도권 야간 업소를 7개나 뛸 때였어요. 새벽 4시나 돼야 집에 오는데 오전에는 언론사 인터뷰를 다녀야 했고요. 매일 녹초였죠.”
“나는 소속사 사무실에서 경리보던 ‘진 대리’였는데 창선이는 너무 잘 나가는 가수였죠. 창선아, 그 때가 나 반 지하방 살 때야. 제가 ‘녹색지대’ 앨범 판매 수익 등을 다 꿰고 있었는데, 농담 안 보태고 바닥에 돈을 흘리고 다닐 때야.”
트로트로 전향하는 시점의 진시몬. 몬 엔터테인먼트 제공
잘 나갔지만 한참 속앓이도 심하게 했던 곽창선에게 진시몬은 위로의 출구였다.
“녹색지대 활동이 힘들었지만 저는 정신력으로 버텼거든요. 워낙 없이 자라서 ‘한 번 잡은 기회는 몸이 부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놓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어떤 스케줄이 있더라도 무대에 서려고 했죠. 그런데 제 뜻과는 맞지 않아 벌어지는 갈등 상황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인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알고보니 불편한 마음으로 노래를 하는 날이 많았다는 거다.
-형이 의지가 많이 됐겠습니다.
“나이는 한 살 차이인데 10살 선배 같아요. 둘 다 20대였는데 배울 게 너무 많았어요. 저는 착하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요. 그런데 사람 관리 같은 건 젬병이에요. 가난하게 자라서 하나를 가지면 잘 내려놓지 않았어요. 형은 돈도 잘 쓰고 자기 것을 남들한테 많이 주더라고요. 형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평생 내가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거죠. 나중에 형은 남에게 베풀었던 것을 곱절로 받더라고요.”
“과찬이네. 없이 살았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제주도에서 방위로 군복무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어. 퇴근 후에 커피숍에서 일을 했지. 제대해서는 칫솔 살균기, 치약 압축기 사업을 하면서 돈은 벌었는데 나중에 저렴한 제품들이 나오면서 부도가 났지. 살려고 식당을 하면서 빚을 갚았고, 거기서 인맥 관리의 중요성도 안 거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상식적으로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했던 노력을 동생이 알아준 거죠.”
-동생 입장에서는 가요계 정상을 찍었던 자신의 삶과 형의 인생을 비교도 해봤겠어요.
“형은 살면서 뭐든지 한 계단씩 거쳐 올라가요. 그래서 지금 올라간 높이가 아주 탄탄해 보여요. 그런데 저는 빠르게 정상에 올라가서 바로 급하강했어요. 문제는 그러다 보니 바로 다시 빨리 정상에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거예요. 기다림의 미학을 모른다는 거죠.”
“창선이의 말대로라면, 저는 산 중턱에만 한 30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중턱에 있는 게 아주 편안해요.”
“형은 걸어서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오는 시간도 한참 걸릴 거예요. 가수로 봐도 생명력이 정말 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형을 보면서 조급함이 조금씩 없어졌어요.”
1996년 ‘애수’로 장르 변신에 성공한 진시몬은 아직도 꾸준하게 ‘트로트의 산’을 오르고 있다.
“형은 ‘애수’ 나오고 무조건 된다고 확신했었어요.”
“창선아, 그 노래가 어떻게 나온 줄 아니? 곡 데모 테이프가 오면 먼저 듣고 확인하는 것도 사무실에서 내 일이거든. 하루는 ‘애수’ 테이프가 왔는데 들어보니 너무 좋은거야. 범룡 형님한테 ‘이거 들어보세요’라고 했어. 형 마음이 내 마음과 같더라고. 곡을 만든 김의섭 씨한테 ‘내가 불러도 되냐’ 고 물어보니 ‘오케이’를 해서 녹음을 했지. 그 때 운이 터져서 나중에 ‘둠바둠바’라는 노래까지 잘 됐지.”
겉보기에는 대접받고 공연을 다닐 만한 동안의 이미지이지만 실상은 전국 어디라도, 보는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달려가는 열혈 가수다. 몬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말, 장터에 갔는데 무대가 없어. 할 수 없이 박스 위에서 노래를 하는데 1절 끝나고 간주 중에 사회자가 ‘지금부터 5분간 계란 한 판에 몇 백원!’이라고 하면 2절 끝날 때 즈음 사람들줄이 끝이 안 보였어.”
-아무리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고 하지만 놀랐겠어요.
“네. 그 때만 해도 저는 ‘나! 녹색지대야’, 이런 자존심이 있었어요. 저는 헬기도 타고 공연 다녔는데 형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형은 역시 한 단계씩 올라가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 제가 반 지하방 살았는데, 마트 행사를 가면 끝나고 사장님이 카트를 끌고 와서 ‘가져가고 싶은 것 있으면 싹 담아’라고 하세요. 출연료 대신에. 하하. 그런데 막상 미안해서 많이 못 담아요. 일단 쌀, 과일 위주로 담기는 하죠. 그런데 적응이 되면 나중에는 은근히 마트 행사를 기다리는 거야. 특히 신갈에 있는 OO유통 마트 사장님이 예술이지. 거기서 행사를 하면 아예 아내를 데리고 가요. 아내한테 그래요. ‘정신 차리고, 미안해하지 말고 담으라’고. 하하. 그래도 다 쓸어 넣어봐야 30만 원 정도예요. 한 달 먹고 살 양식을 채워갈 때 마음은 정말 좋습니다.”
-‘1990년 진시몬’에 기대지 않아서 찾아온 행복 같네요.
“맞아요. 제 노래 가사에도 나와요. 사람 한 명 한 명, 먼지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저도 무대에서만 가수지요.”
“제가 그런 모습을 알기 때문에 시몬 형을 존경하는 것 같아요. 방황하던 저에게 역시 손을 내밀줄 아는 형이잖아요. 그런 형이 옆에 있으니 노래 열정도 생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탁 트인 한강 고수부지에서 팬들에게 단 하루만 편안하게 일과 고민을 내려놓자는 의미로 ‘내려놓기’를 열창하고 있는 진시몬과 곽창선. 진시몬 인스타그램
“펜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인생이었죠. 손해를 감수하고 내려놓으니 행복이 계속 옵니다.”
‘개미 두 마리’는 유튜브 채널(개미 두 마리 two ants)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3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강 고수부지와 정동진, 명동성당 등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이를 영상으로 공개하고 있다.
최근 명동성당에서 ‘내려놓기’ 공연과 영상 촬영을 하고 포즈를 취한 두 사람. 진시몬 제공
“형 때문에 잃어버린 무대를 찾으니 노래를 다시 깨우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내가 이렇게 불렀나, 바꿔야 되는구나’라는 노래 숙제를 저에게 계속 던지고 있네요.”
“창선이가 요즘 노래하는 것 보면 예전보다 더 좋아졌어요.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니까 노래도 마음을 따라가는 게 보여요.”
-동생을 ‘시몬지대’로 끌어온 기분이 어떠십니까.
“대박 터트리자, 뭐 이런 건 없어요. 옛날처럼 신곡 12개 채워서 앨범내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예요. 좋아하는 노래하면서 둘만의 인생 방향을 찾자는 거지요.”
진시몬에 시몬’s 동생이 붙은 ‘개미 두 마리’ 도 섭외가 오면 간다. 거절이 없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이제 1000명 조금 넘는데, 급하게 늘릴 마음 없다. 즐겁게 노래하는데 입소문이 퍼지면 그걸로 ‘장땡’이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채워주고. ‘시몬 지대’로 오면서 곽창선은 ‘녹색지대’ 전성기 때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찾았다. 진시몬 제공
“요즘 모니터를 해보면 가수로서 고쳐야 할 게 보이더라고요. 가수들이 세월이 지나 본 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저희를 찾는 팬들은 예전 감성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저는 ‘녹색지대’ 때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해요. ‘여전히 CD 틀어놓은 것 같다’라는 댓글이 저에겐 큰 행복일 것 같습니다.”
“창선아, 우리 활동 콘셉트의 핵심이 ‘무보정’이야. 있는 그대로. 인간미가 있잖아.”
“삑사리(음이탈) 나도 그냥 가는거죠. 하하. 올해 봄에는 300석, 500석 장소에서라도 ‘개미 두마리’ 콘서트를 해보는 게 어때요.”
“너랑 같이 있으니 일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 더 붙어 있어줘야겠어. 하하. 더 잘 될 것 같아. 조짐이 그래요. 망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좋은 방귀가 잦은 걸 보니 조만간 O이 터지겠다. 창선아.”
둘은 바라보는 곳이 점점 하나로 수렴돼 같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즐겁게 노래만 할 수 있게 욕심은 내려놓고 같이 간다, 끝까지’. 보통 우정이라면 약속할 수 없는 일이다. 진시몬 인스타그램
“가사는 정말 남 주기가 싫어. 예쁘게 쓰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사는 모습, 걱정, 작은 희망 등을 있는 그대로 쓰고 싶어. 구독자는 수는 내가 신경 안 쓸게. 우리 유튜브에 들어오는 팬들 3분의 2가 ‘녹색지대’ 팬분들 같아. 창선이를 믿어.”
거리감이 전혀 안 드는 둘은 서로를 보약 같은 존재로 인정한다. 진시몬을 대표 트로트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가 ‘보약같은 친구’다. 곽창선을 보니 절로 노래가 나오는 모양이다.
<보약같은 친구>
작사 진시몬
작곡 진시몬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네는 좋은 친구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두사람
전생에 인연일거야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같은 친구야
아아아,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같은 친구야
…
진시몬이 직접 작사, 작곡한 ‘보약같은 친구’는 의리파 남성들에게 대표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다. 진시몬에게 보약은 당연히 곽창선이다. KBS 가요무대 캡쳐
“1년 전 만 해도 그냥 일반인이었던 저에게 형이 다시 노래라는 옷을 입혀줬잖아요. 부끄럽지 않게 다시 ‘가수 곽창선’이라 말하고 다닐 수 있게 해준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가 없죠.”
“보약같은 친구 만들고 나니 소속사 사무실 사람들이 ‘보약이 거슬리는데, 보석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일축했죠. ‘거슬려? 그럼 됐어. 반응 좋을거야’라고요. 그러더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난리가 났어요. 하하. 앞으로 ‘개미 두 마리’ 스타일은 이럴 겁니다. 계속 듣고 싶은, ‘거슬리게 하는’ 노래로 팬들을 무심코 쳐볼 거예요. 인생 보약인 창선이와 무엇인들 못할까요.”
“형, 신세대 가수들이 예전 선배들 노래를 리메이크하곤 했잖아. 우리도 신세대 아이돌의 노래를 ‘개미 두마리’ 버전으로 불러보고도 싶어요. 요즘 ‘골든걸스’가 대세인 것처럼요. 형이 저랑 함께 노래하면서 발성이나 톤이 젊어지긴 했어요. 하하.”
“어떻게든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보자고. 노래를 혼자 부를 때보다 훨씬 좋아. 내 단점을 너가 잘 커버해주거든. 희한하게 창선이는 어떤 가수든지 잘 받쳐줘요.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다는 가수 진시몬(왼쪽)과 ‘녹색지대’ 곽창선이 지난해 연말에도 만나 삼계탕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늘 한 얘기 또 해도 재밌다고 웃는 사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 나가면 우리 무조건 편집돼 창선아. 하하. 유튜브로 활동을 해보니 ‘개미 두 마리’ 콘셉트,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생기는 것 같아. 한 번은 우리 유튜브 영상 댓글에 누가 ‘손범수(전 KBS 아나운서), 백종원(더본코리아 대표) 씨, 잘 보고 갑니다’라고 써놨더라고. 창선이는 손 아나운서, 내가 백 대표님을 닮았다는 거잖아. 안 되겠다. ‘성대모사 먹방’ 콘셉트로 노래를 준비해보자.”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