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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사 비극’ 앤드루 서, 30년만 조기 석방…“정말 잘 살겠다”

입력 | 2024-01-28 17:02:00

19세 때 누나 사주로 누나 동거남 살해 “가족 위해 옳은 일 한다고 생각”




“30년 만에 세상에 나온 감정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정말 잘 살겠습니다.”

26일(현지 시간)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 일리노이주 키와니 교도소 앞에서 형을 마치고 두부를 먹이는 조촐한 한국식 출소자 맞이가 열렸다. 누나의 동거남을 살해해 사실상 무기징역을 살던 한국계 미국인 앤드루 서(한국명 서승모·50)가 주인공이었다.

미 시카고트리뷴에 따르면 서 씨는 1993년 9월 25일 시카고 벅타운에서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당시 19세였던 그는 1995년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80년형으로 감형됐다. 미 검찰은 “서 씨와 누나 캐서린(54)이 오두베인 명의의 생명보험금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를 노린 범죄”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 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누나에게 속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그에게 누나는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 엄마 재산도 도박으로 탕진하고 자신을 학대한다”며 살인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서 씨는 2010년 자신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하우스 오브 서’에서 “원수를 갚고 누나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며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 씨가 누나의 말을 무조건 믿고 살인을 저지른 배경에는 그의 불행한 가족사가 한몫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서 씨 가족은 1976년 이민 왔지만, 아버지는 198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탁소를 운영해 가족을 부양하던 어머니도 1987년 강도에게 목숨을 잃었다. 어렸던 서 씨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누나에게 크게 의지했다.

누나가 왜 살인을 사주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서 씨는 2017년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돈 80만 달러의 유산을 노린 누나가 살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캐서린은 하와이로 도주했다가 붙잡혀 현재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역 한인사회는 한인 이민사의 비극이 서 씨의 불행을 야기했다는 판단 아래 줄기차게 주 정부에 사면을 청원했다. 서 씨가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고등학교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정상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호소였다. 주 정부는 사면 대신 서 씨를 모범수로 인정해 조기 출소시켰다.

이날 교도소 앞에는 사면 청원을 주도했던 한인교회 관계자들과 캔디스 챔블리스 변호사 등 6명이 서 씨를 맞았다. 시카고트리뷴은 “두부를 먹는 건 부정을 씻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을 담은 한국식 관습”이라 전했다. 교도소에서 학사 학위와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서 씨는 앞으로 지역사회 청소년 교육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