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청사 내 모습. 뉴시스
● 핵심 증언 중 A4용지 절반 일치… “정상 조사-작성 아닐 가능성”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진실화해위 소속 A 조사관은 2022년 말 ‘전남 완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조사를 맡았다. 이 사건은 1947년 5월부터 1950년 10월 사이에 전남 완도군의 한 마을에서 군경에 의해 민간인 8명이 학살된 사건이다. A 조사관은 2022년 말부터 지난해 초 사이에 전남 완도군과 목포시, 제주도 등을 방문해 서로 다른 학살 피해자 유족 등 신청인 3명을 만나 사건 관련 진술을 들었다. A 조사관은 지난해 12월 피해 진술서와 조사보고서를 진실화해위 1소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올 1월 서류를 검토 과정에서 A 조사관이 제출한 진술서 3건의 문구가 상당 부분이 겹치는 사실이 확인됐고, 진실화해위는 자체 조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이달 13일 A 조사관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70여 년 전 사건에 대한 진술을 100km 넘게 떨어진 장소에서 각각 들었는데 문구가 똑같은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라며 “정상적인 조사 및 진술서 작성 과정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 해당 조사관 “신청서 토대로 사투리 등 수정한 것, 조사는 정상”
24일 경기도 모처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A 조사관은 “(피해 신청인 3명의 진술서에) 일부 비슷한 문구가 담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허위 작성’ 의혹은 부인했다. 조사 방식의 차이일 뿐,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핵심 내용을 적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A 조사관은 애초 피해 신청인 3명이 제출한 신청서가 거의 똑같았다고 주장했다. 피해 신청서는 80, 90대 고령의 신청인들이 직접 작성하기 어려운 만큼 통상 유족회가 돕는데, 이를 토대로 질문지를 작성해 ‘예, 아니오’로 답변을 받아 진술서를 작성하다보니 비슷한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게 A 조사관의 설명이다.
A 조사관은 “‘희생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원하느냐’고 물은 뒤 신청인이 ‘맞다’고 답하면 질문을 그대로 담는 방식으로 진술서를 작성했다”라며 “(신청인들이) 사투리가 심해 이를 수정하고, 인생 이야기 등 핵심과 관련 없는 부분을 제외하다 보니 진술서 문구가 비슷해진 것 같다”고 했다.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활동 기간은 올해 5월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23일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조사기간을 1년 연장하는 안건이 의결되면서 내년 5월까지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달 9일 기준 전체 신청 사건 2만92건 가운데 처리가 완료된 사건은 1만567건(53%)이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