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이모 씨(57)는 9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한 뒤 혼자 살기 시작했다. 단칸방을 전전하다가 월세를 못 내 2년간 노숙도 했다. 구청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술을 끊고 고시원에 방을 얻었지만 현재 소득은 약 71만 원의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가 전부다. 이 씨는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 등으로 월 30만~50만 원가량을 벌기도 했지만 당뇨로 건강이 악화돼 최근엔 일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진 않다.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다.
국내 1인 가구 5명 중 4명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어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1인 가구 5명 중 1명은 ‘고독사 중증 위험군’에 속해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2412건이었던 국내 고독사는 2021년 3378명으로 4년 만에 40%가량 늘었다.
● “1인 가구 78.8%가 고독사 위험군”
보건복지부는 만 19세 이상 1인 가구 94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고독사 예방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고독사 위험이 가장 높은 그룹은 중장년 남성이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고위험군과 중위험군을 합친 ‘중증 위험군’ 비율이 26.7%로, 여성의 18.1%보다 8.6%포인트 높았다. 연령별로는 50대의 중증 위험군 비율이 35.4%로 60대(31.2%)와 70대 이상(18.8%)보다 높았다. 50대의 위험 비율이 60대 이상보다 높은 것은 기초연금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 부양의 의무가 큰 50대에 직장을 잃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가족관계가 소원해지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기 쉽다”며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 안전망에서도 벗어나 있어 1인 가구 중 가장 사각지대가 많은 연령층”이라고 했다.
● “고위험군 63.4%, 하루 1끼만 먹어”
연구진은 고독사 중증 위험군 중 2023명에 대해 심층 조사도 실시했다. 고위험군 63.4%와 중위험군 19.3%는 하루 평균 식사 횟수가 1회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돌봄 서비스는 식사 준비 25.1%, 친구 만들기 18.6%, 일자리 상담 13.3% 등으로 조사됐다. 중증 위험군 중 최근 1년 안에 자살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는 응답은 18.5%, 자살 시도를 한 적 있다는 응답은 6.4%였다.
전문가들은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 발굴해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생애주기별로 고독사 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기존 제도에서 누락된 사각지대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미래생산성 손실, 의료비 부담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교수는 “아직 노동력이 충분한 중년층에겐 직업훈련이나 재교육 등 경제활동 참여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면 본인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