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은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하고, 일부에게만 집중된 보조금을 모두가 차별 없이 받을 수 있게 해 이용자 편익을 증진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제정 당시부터 단통법이 통신사들의 지원금 경쟁을 제한하고 담합을 부추긴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9년이 경과한 지금, 이른바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은어)은 일부 없앴을지 모르나 평균적인 단말기 보조금 혜택을 낮춤으로써 전체적인 이용자 후생은 저하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서비스 요금 경쟁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도 단통법의 제정 취지였으나,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 초기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 설정에서의 동조행위, 미흡한 5G 투자 등을 보면 단통법 이후 보조금 경쟁이 요금, 품질 경쟁으로 전환되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과거 단통법 시행 이전 이동통신사들은 단말기 보조금을 경쟁의 주된 도구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으로 단말기 보조금 경쟁이 제한되면서 이통사 경쟁은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용자에게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제공하도록 했는데, 이동통신사들은 지원금 확대가 약정요금 할인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지원금 확대에 소극적이었다.
공공요금으로 출발했던 통신부문에서는 독점 사업자에 지역적으로 차별 없는 가격을 부과할 것을 의무화하였으나, 민영화 이후 특히 개인화된 서비스가 나오면서 단일 가격 의무 규제는 사라졌다. 단말기 보조금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규제를 하고 있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미국, 핀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들에서는 과거 서비스와 단말기의 결합 판매가 이용자의 선택권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한 바 있으나,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폐지해 대부분의 국가는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
경제이론에서는 할인과 가격차별이 소비자 후생에 유리하다는 분석 결과가 많다. 특히 비체계적인 가격차별(Unsystematic price discrimination)은 경쟁을 촉진하고 카르텔을 약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소비자 후생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통법 제정 9년, 늦었지만 이용자 차별은 절대 안 된다는 단통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경쟁이 주는 혜택과 이로움을 회복시킬 때다.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