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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강만수’

입력 | 2024-01-29 03:00:00

MB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자전소설 ‘세종로 블루스’ 펴내




1980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여름날 오후. 재무부 공무원인 ‘나’는 총을 멘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로 걸어 들어갔다. 살벌함이 가득한 국보위엔 육군 소장인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현재 국가의 재정상태를 잘 모르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하면 일어나는 각종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처음에 근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던 재무분과위원장은 사표까지 들고 온 나의 지적에 조금씩 귀를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무분과위원장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수많은 공무원이 사표를 냈다. 상부에 잘못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동료도 있다. ‘나’는 바람이 불고 밤비가 내리는 세종로를 걸으며 되뇐다. “열정과 꿈은 부서졌다. 내일 출근하지 말자. 그들의 조국과 돌아서자.”

지난해 11월 출간된 소설집 ‘2024 신예작가’(한국소설가협회)에 실린 단편소설 ‘세종로 블루스’의 내용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바로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씨(79·사진)다. 강 전 장관은 2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종로 블루스’는 내 공무원 시절 고뇌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해 경제부처 공무원으로 30여 년 일한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소설가를 꿈꾼 문학청년이었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1902∼1968)의 장편소설 ‘분노의 포도’를 읽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가 되겠다며 자퇴했다가 1년 만에 복학했다. 1997∼1998년 재정경제원 차관, 2008∼2009년 기재부 장관을 지냈지만 문학청년의 꿈은 버리지 못했다. 그는 “2022년 한국소설가협회가 주관하는 제73회 한국소설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동백꽃처럼’을 투고해 당선됐다”고 했다.

‘세종로 블루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44년 전으로 돌아간 듯 각 정부 부처들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부가가치세 존치를 두고 설왕설래하던 당시 분위기를 치밀한 르포르타주처럼 전한다. 신군부 세력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 누구도 그들에게 그런 칼을 주지 않았다”처럼 비판한 대목은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는 “신군부 치하에서 당시 공무원들은 각자 고민을 지니고 있었다”며 “분노, 모욕, 체념이 뒤범벅된 세월을 성찰하며 마지막으로 외치고 싶은 얘기를 썼다”고 했다.

다음 계획을 묻자 그는 소설가로서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곧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을 각각 낼 계획입니다. 늦은 만큼 꾸준히 써야죠.”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