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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외에도 亞 2억명 쇠는 음력설, 시기는 제각각[옛 풍속을 보다/정연학]

입력 | 2024-01-29 23:33:00

세계 각국의 ‘음력설’
이슬람은 양력 8~9월, 힌두교는 10말11초
한국, 1989년 ‘설’ 이름 되찾고 사흘연휴
세배 덕담, 원래는 ‘…했다지’ 완료형으로



중국의 ‘춘제’ 전통 차례상과 베트남 설 ‘뗏’을 기념한 사자춤 공연, 그리고 ‘빛의 축제’라 불리는 인도의 설 ‘디왈리’에 한 소녀가 등불을 켜고 있는 모습(위쪽부터). 많은 나라들이 태음력을 기준으로 설을 쇠는데, 그 시기와 문화는 다르다. 중국의 춘제와 베트남의 뗏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양력 1∼2월 사이인 데 반해 힌두교의 설 디왈리는 10∼11월 사이다. 정연학 연구관 제공·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유엔이 지난해 12월 78차 유엔 총회에서 음력설을 ‘선택 휴일(floating holiday)’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영문 표기도 ‘Chinese New Year’가 아닌 ‘Luna New Year’라 했다. 중국뿐 아니라 음력설을 쇠는 2억 명의 아시아 인구를 고려한 결정이다.

음력설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현재 중국과 한국의 설 풍속은 다르다. 오히려 중국 설은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약화된 반면에 한국 설은 을미개혁(1895~1896년)으로 양력 설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계속 그 전통이 이어졌다.

음력설을 중국에서는 ‘춘제’, 베트남에선 ‘뗏’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양·음력설 모두 설이라고 한다. 이슬람도 태음력(太陰曆) 설을 쇤다. 하지만 날짜는 다르다. ‘라스 앗사나 알히즈리야(Ras as-Sanah al-Hijriyah)’는 양력 8월에서 9월 사이다. 태음력에 뿌리를 둔 히브리력의 유대인 설 ‘로슈하샤나’는 9월 말 내지 10월 초, 힌두교 인도 설 디왈리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이다. 불교 국가인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물 축제인 ‘송끄란’과 ‘틴잔’을 즐기는 4월 중순이 음력설이다. 이처럼 태음력을 기반으로 한 음력설인데도 세계의 설은 각국의 환경, 문화, 종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은 설 전 집 안 대청소를 하고, 폭죽을 터뜨리고,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물만두(餃子·교자)를 먹는다. 물만두는 묵은해에서 새해로 바뀌는 교차점을 뜻하는 ‘자오쯔(交子)’와 발음이 같아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다. 또 그 모양이 고대 중국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재물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고 있다. 폭죽(爆竹)은 ‘녠(年·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을 몰아내고, 복을 알린다는 ‘바오주(報祝)’와 발음이 같아 재물신을 환영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베트남 뗏은 음력 1월 1일부터 7일까지다. 에너지와 번영을 상징하는 복숭아꽃, 매화, 금귤나무로 집을 장식하고, 찹쌀떡(Banh Tet), 돼지고기와 녹두로 속을 채운 찹쌀밥을 바나나나 코코넛 잎으로 싸서 찐 ‘바인쯩’을 먹으며 한 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한다.

인도 새해인 디왈리는 ‘빛의 축제’로 5일 동안 이어진다. 악마들을 무찌르고 아유타 왕국으로 돌아온 라마 왕을 환영하기 위해 백성들이 환하게 밝힌 등불을 들고 맞이했던 것에서 기원한다.

이슬람과 불교 새해는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새해에 특별한 음식이나 풍속은 없고, 전날 사원에서 무하람(Muharram) 예배를 드리고, 당일에도 꾸란을 독송하거나 기도를 올리는 정도다. 무하람은 ‘성스럽다’는 의미이며, 이슬람력의 첫 번째 달로 이슬람권에는 한 달 동안 싸움이나 전쟁을 금한다. 불교 국가인 태국과 미얀마에서 새해 가장 중요한 일은 정성스럽게 음식과 꽃을 준비해 사찰을 방문하는 것이다. 불상을 깨끗한 물로 씻는 관욕 의식을 하고 스님들에게 보시를 한다. 그다음에는 죄업을 씻고 깨끗한 삶을 다짐한다는 의미로 서로 물을 뿌리며 새해를 맞이한다.

한국은 1896년(고종 33년) 양력을 선택하면서부터 ‘신정’과 ‘구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신정을 개나 쇠는 설이라는 뜻으로 ‘개설’, ‘왜설’이라고 낮추어 불렀고, 일제의 탄압에도 공공연하게 몰래 음력설을 쇘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정부는 양력설 체계를 고집했는데, 민간의 음력설 전통이 이어지자 1985년 음력설을 공휴일로 제정했다. 이때 음력설에 ‘민속의 날’이라는 지극히 어색하고 궁색한 이름을 부여하였는데 4년 뒤인 1989년에야 설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연휴 기간도 사흘로 늘었다.

설과 관련해 잘못 전해진 전통이 있다. 먼저 세배할 때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본래 세배 후엔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 덕담을 해야 한다. 덕담도 완료형으로 해야 한다. 가령, 시험을 치를 사람에게는 “올해 꼭 합격했다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올해는 더 많이 벌었다지” 하는 식이다. 최남선(崔南善) ‘조선상식’에 새해 덕담은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경하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갈수록 설의 전통적, 가족적인 분위기가 퇴색하고 있다. 요즘은 휴일의 의미가 더 강하다. 고향에 가는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가장 주된 원인은 전체 가구의 26%를 차지하는 1인 가구의 증가일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설과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한국의 5개 대표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나 풍속도 바뀔 수밖에 없지만 명절이 갖는 의미를 지키고 그와 관련한 풍속, 놀이, 음식 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정이 필요했다고 본 것이다. 사회는 변한다. 하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이 지닌 가치와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통 설 문화를 박물관에서나 확인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설을 맞아 그 가치를 되새기기를 기원해 본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