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벤처와 8년 공동연구, 한국형 3세대 인공관절 개발 2022년 4월 식약처 허가, 지난해 11월 美 FDA 승인 PNK 인공관절, 국내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사용 “3D 기술로 정확도↑, 수술 시간↓… 치료 만족도 높아”
2023년 8월 신축 확장 이전한 연세사랑병원 전경.
한국인 맞춤 인공관절의 탄생
고용곤 연세사랑병원장이 ‘PNK 인공관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마모된 연골이 재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훼손된 연골의 양이 많지 않으면 약물, 주사, 물리치료 등과 같은 보존적 요법을 통해 염증을 완화하고 통증 등의 증상을 약화하기도 하지만, 연골이 모두 닳은 환자는 인공관절 치환술이 필요한 때도 있다. 따라서 인공관절은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손상된 연골을 대신할 수 있고, 환자의 몸에 꼭 맞는 디자인을 선택해야 수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무릎 인공관절은 20년을 주기로 발전해왔다. 1970년대 등장한 1세대 인공관절이 단순 통증과 마모 절감을 위해 제작됐다면 1990년대 나온 2세대 인공관절은 성별에 따른 차이 등을 고려해 재질과 디자인이 달라졌다. 2010년대 개발된 3세대 인공관절은 기존 치환술 환자들이 겪는 합병증을 줄일 수 있도록 개인화된 디자인을 제공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연세사랑병원이 개발한 PNK 인공관절은 3세대 인공관절에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한 제품이다. PNK 인공관절이 ‘한국인 맞춤형 인공관절’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간 인공관절 치환술에 사용되는 인공관절은 입식 생활을 하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제작돼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평소 양반다리를 자주 하는 한국인 특성상 무릎이 더 많이 구부러지는 고굴곡 디자인이 필요하다. 또 해부학적으로 서양인과 달리 동양인은 무릎뼈의 간격이 좁고 무릎 뒤 연결 뼈가 보다 완만한 편이다.
한국인 특성에 맞는 인공관절을 개발하기 위해 연세사랑병원은 디지털 헬스케어 및 의료기기 기업 스카이브의 공학 연구팀과 함께 8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또 퇴행성관절염 환자 1만2000여 명의 무릎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간 작성된 논문만 18편이다. 이 중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에서 한국인 성별에 따른 해부학적 차이에 관해 설명한 논문은 영국·남아프리카 슬관절학회 공식 학술지(‘The Knee’)에 게재됐다. 고용곤 연세사랑병원장은 “해외에서 생산된 인공관절은 한국인과 맞지 않아 설계부터 디자인까지 다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마모율 최소화해 인공관절 수명 늘려
‘PNK 인공관절’
현재 PNK 인공관절은 연세사랑병원뿐 아니라 신촌·강남·용인 세브란스병원과 고려대 안암병원, 국제성모병원 등 국내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1000여 명의 환자가 PNK 인공관절을 이용한 수술을 받았다.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연세사랑병원이 PNK 인공관절로 치환한 환자의 상태를 자체 분석한 결과 “무릎 구부리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 관절 사용 시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는 평가가 두드러졌다. 통증이 줄었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고용곤 병원장은 “대학병원을 기점으로 저변 확대를 시작했다”며 “환자의 치료 만족도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또 PNK 인공관절은 마모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인공관절 자체 수명을 늘려 이른 나이에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환자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인공관절은 실제 무릎 관절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된다. 최근 격한 운동이나 잘못된 습관 등으로 퇴행성관절염을 진단받은 사람이 고령층에서 젊은 세대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실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은 환자가 이후 재수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평균적으로 인공관절 치환술 시점은 60대 후반에서 70대지만, 사람의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인공관절 수명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스카이브에 따르면 PNK 인공관절은 타 3세대 인공관절과 비교해 낮은 마모율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PNK’ 연내 미국 수출 계획”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무릎 인공관절 수술 건수는 연간 약 7만 건 이상이며, 총진료 금액은 750억 원이 넘는다. 연세사랑병원은 수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PNK 인공관절뿐 아니라 환자별 맞춤형 수술도구(PSI)를 사용하고 있다. 환자의 무릎을 3D로 구현해 가상 수술로 먼저 정확한 삽입 위치와 절삭 위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정확도를 높이고,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최근 연세사랑병원은 맞춤형 수술도구뿐 아니라 무릎 인공관절 수술 시 적용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개발에도 성공했다. 증강현실 시스템은 인공관절 수술의 최신 트렌드로 현재 미국에서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분야다. AR 고글을 통해 환자의 무릎을 보면 정확한 정렬 각도를 알 수 있다. 이는 절삭 정도와 위치 등 수술 정확도를 높여주며 개인별 맞춤 수술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증강현실 시스템은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획득 후 2025년 상반기부터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세사랑병원 관계자는 “한국인 맞춤형 인공관절이 국내 환자들의 치료 만족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가까운 미래에 개인별 맞춤형 인공관절 수술까지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사랑병원은 이와 같은 성과로 2018년, 2020년에 이어 2024년 1월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제5기 전문병원에 지정됐다. 서울 강남권 관절 전문병원은 연세사랑병원이 유일하다.
FDA 승인을 받은 뒤, 연세사랑병원은 PNK 인공관절의 해외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세계 인공관절 시장규모는 2025년 329억 달러(약 43조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인공관절은 크게 후방십자인대를 제거하는 PS(PCL-Substituting) 타입과 후방십자인대를 보존하는 CR(Cruciate-Retaining) 타입으로 구분된다. 연세사랑병원은 한국인의 좌식 문화를 고려해 후방십자인대를 제거하는 PS 타입을 먼저 개발한 데 이어 CR 타입 역시 개발에 성공했다. 의료기기 업계에선 미국·유럽의 인공관절 시장 점유율을 PS 타입 51%, CR 타입 48%로 보고 있다. 연세사랑병원 측은 올해 미국정형외과학회 등에 PNK 인공관절을 선보인 뒤 본격적인 수출 활로 개척에 나설 계획이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