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마음의 병’ 1020 급증…정신보건과 운영 지자체 2곳뿐

입력 | 2024-01-30 15:15:00

정신병원 입원 5명 중 1명꼴 '1020 세대'
"마음 건강 도움 주는 정책 시급한 실정"
서울·경기 제외 지자체 정신보건과 없어
위센터 상담교사도 1명 뿐 '턱없이 부족'




‘마음의 병’으로 시름하는 1020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마음의 병은 사회구조적·개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발생한다는 점에서 정부·지자체, 민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국 16개 시도 중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정신보건과를 두고 있는 곳은 서울과 경기 2곳에 불과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입원한 10~20대는 2022년 기준 전체 입원 환자의 약 22%인 1만6819명이었다. 입원 환자 5명 중 1명꼴은 1020세대였던 셈이다. 마음이 아픈 1020세대 증가세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년도 10~20대 입원 환자의 65%(1만1016명)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2022년 자해·자살로 응급실에 간 환자 4만3268명 중 약 46%(1만9972명)는 1020세대였다.

최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공격한 중학생 A군도 우울증이 심해져 폐쇄병동 입원을 대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양극성 장애’ 소견을 받았다고도 했다. 양극성 장애는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해 흔히 ‘조울증’으로 불린다.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중 일부는 첫 진단을 받고 수년 후 조증을 보인다. 이런 경우 양극성 장애로 진단이 바뀌게 된다. A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A군은 수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겪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마음의 병을 앓는 1020세대가 급증한 주요인으로는 저성장 시대 노동 시장 위축,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 자산 가치의 변동과 부의 대물림 등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가 꼽힌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2013년 3.5%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1%대(1.9%)로 떨어졌다. 올해에는 1.7%로 더 하락할 전망이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013년 43.9%에서 2016년 38.8%로 5.1%포인트 하락했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도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장기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일을 구하기 어렵고, 설령 구한다고 해도 세대간 인식 차이는 매우 크다”면서 “또 1인 가구 비중이 40%를 넘어선 가운데, 주된 의사소통 창구가 된 SNS를 통해 보는 세상은 화려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층은 무한경쟁 시대 취업 준비, 비정규직 같은 고용 불안정성, 부채 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젊은층은 경쟁이 과열된 사회에 살면서 기성세대에 비해 성취감을 얻기 더 어려워졌다”면서 “또 직장 등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래 경제성장 동력인 1020세대가 마음의 병을 앓지 않도록 하려면 의료는 물론 심리,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지역사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 교수는 “마음건강 분야는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서울·경기 지역에만 2020년 이후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정신보건과가 생겼고, 나머지 지자체에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살예방법 3조에는 ‘국민은 자살 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됐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백 교수는 “학교, 지역사회, 직장 어디에서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 받고 조기에 치료 받을 수 있으려면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 담당 부서가 있어야 한다”면서 “종합적인 계획 하에 수요에 따라 상담과 치료를 계획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자살 위험군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지자체별 차별화된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2000년대 초반 10만명당 27명을 웃돌았던 자살율이 2022년 17.5명으로 확 줄었다.

각 지역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위(Wee)센터 상담 교사(상담사)도 턱없이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 위센터는 지역 내 전문상담 교사나 상담사, 심리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을 배치해 위기 학생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과 상담, 치료, 심층적 심리 검사 등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위기 학생은 가정에서 학대를 받거나 폭력 등 비행을 일으킨 학생과 피해 학생 등을 의미한다.

임 교수는 “위센터에 상담사가 1명정도 밖에 배정돼 있지 않고 전문 상담사가 없어서 학과 선생님이 대신 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면서 “학교 밖에 훨씬 더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들이 많은 만큼 교육부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우울증 중재 프로그램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안 청소년 관련 정책은 교육부,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 경찰(여성청소년계) 등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