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증오라는 감정에는 휘발성이 있습니다. 현실 판단이 떨어지면 점화되고 활활 타오릅니다. 증오가 지나쳐서 스스로 안 되면, 외부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통제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누구에게 왜 어떻게 증오심을 품게 되었는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개인의 증오가 쌓이고 쌓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넘쳐흘러 관계를 해치기 마련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갈등을 기반으로 증오를 심고 키우는 데는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의 갈등과 끊임없는 다툼이 크게 역할을 합니다. 정치가 통합이 아닌 분열을 향해 치달으면 사회 전반의 증오 지수도 급하게 상승합니다.
증오라는 현상은 이미 걱정스럽게도 범죄학이나 사회학 교과서에서 뛰쳐나와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습니다. ‘증오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 대부분은 놀랍게도 우리와 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미리 분별하고 알아봐서 거리를 둘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미세먼지처럼 증오심이 우리 자신의 마음에 슬금슬금 배어들기 전에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증오의 사회적 확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저감 조치’도 시행해야 합니다. 개개인의 ‘마스크’ 착용은 임시 방책일 겁니다. 증오의 생산을 최대한 감소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의 각성도 필요합니다. 증오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남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형세를 보니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일상에서 나도는 ‘증오’ 메시지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지면서 일일이 비판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합리적 이성과 본능적 공격성의 경계에 뚫린 구멍에 익숙해지면 결국 경계는 무너집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낯설게 만들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증오가 일상이 되는 세상은 시한폭탄을 끼고 잠에 빠진 세상과 같습니다.
증오의 뿌리는 편 가르기에 따른 적개심입니다. 편 가르기보다는 타협을, 적개심보다는 공감 능력을 길러야 증오의 번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증오의 뿌리 내리기는 강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쉽게 행해지는, 사소하게 보이는 차별적 행위도 증오가 자라는 토양이 됩니다. 극단주의자들은 ‘보통 사람들’의 순진한 일상에서 증오가 자라도록 조장하고, 증오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고, 더욱 분발하도록 선동할 겁니다. 막상 범죄의 가해자가 되면 외면할 겁니다.
‘선거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그러하듯이 일면을 엿보면 ‘증오의 계절’이 예측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겨서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말과 행동을 애써서 사려 깊게 조심하지 않으면 증오 생산의 공모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 영역은 좋든 싫든 간에 우리 모두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나가서 살 수 없다면 내부를 순환하는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방관하지 말고 애를 써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