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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젊어졌다, 문화유산 본뜬 ‘뮷즈’와 함께

입력 | 2024-02-01 03:00:00

술 부으면 붉어지는 ‘김홍도풍 취객’
BTS RM도 산 ‘반가사유상’ 뮷즈
레트로 열풍속 “힙하다” 인기몰이
문화유산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



18세기 후반 수묵채색화 평안감사향연도(오른쪽 사진)의 등장인물을 본떠 제작한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주잔 겉에 편안하게 늘어진 선비 한 명이 그려져 있다. 차가운 액체를 부으니 선비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며 주변에 붉은 꽃이 핀다. 그야말로 기분 좋은 ‘취객’의 모습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지난달 출시한 굿즈 ‘취객 선비 3인방 변색잔 세트’ 중 하나다. 온도가 낮아지면 붉은색이 나타나는 ‘시온 안료’를 활용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지난해 재단의 굿즈 공모전에서 당선된 디자인으로, 인터넷에서 “힙하다” “귀엽다” 등의 반응이 잇따르며 출고된 1100개 상품이 완판됐다.

이 굿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8세기 후반 수묵채색화 ‘평안감사향연도’(가로 196.9cm, 세로 71.2cm) 속 취객을 본떠 제작됐다. 김홍도 화법을 이어받은 신원 미상의 화가가 대동강 일대에서 열린 평안감사의 취임 기념잔치를 묘사했다. 취객은 물론이고 아전과 악공, 장사꾼 등 조선 후기 사람들의 분주한 일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앞서 2020년 박물관은 이 그림과 디지털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 특별전을 열었다.

정병모 한국민화학교장(전 경주대 교수)은 “잔치를 함께 즐기는 민중의 모습이 유머감 있게 묘사돼 작품적 가치가 높다”며 “레트로를 즐기는 흐름과 맞물려 굿즈가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색잔 세트를 디자인한 김지예 씨(34)는 “인터넷에서 평안감사향연도가 ‘조선시대 취객의 모습’이라며 ‘밈’(인터넷 유행)이 된 걸 보고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물관 기념품을 말하는 ‘뮷즈’(뮤지엄+굿즈)가 젊은층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박물관 전시와 맞물려 개별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뮷즈 매출액은 149억 원으로 1년 만에 약 27% 늘었다. 김미경 재단 상품기획팀장은 “처음에는 상품 디자인에만 관심을 갖다가 뮷즈와 연관된 전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며 “뮷즈를 통해 시민들이 진지하고 어렵게 여겨온 문화유산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보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오른쪽 사진)을 모티브로 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국보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본뜬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굿즈와 전시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다. 반가사유상의 오묘한 미소와 색색의 파스텔톤이 어우러진 상품으로 2020년 12월 출시 이후 3만2000여 개가 팔렸다. 이는 최근 10년간 출시된 뮷즈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이 상품은 텅 빈 공간에 반가사유상 2개를 전시해 ‘멍 때리기 명소’로 인기를 끈 박물관의 ‘사유의 방’ 전시와 맞물려 크게 주목받았다. 그룹 BTS의 리더 RM이 이 미니어처를 소장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오른쪽 사진)를 본뜬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1월 출시된 미니어처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개당 9만9000원으로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골드 색상은 품절되기 일쑤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금동대향로를 3차원(3D)으로 프린팅해 제작했다. 이 밖에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본뜬 파우치, 우산 겸 양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뮷즈는 젊은층을 박물관으로 이끄는 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뮷즈 구입자 중 20대(12.7%)와 30대(48.7%)의 비중이 전체의 61.4%에 달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레트로 열풍에 따른 뮷즈 인기가 문화유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