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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도 방어벽도 무너뜨리는 그들[펫 앤 라이프/이원영]

입력 | 2024-02-01 23:24:00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 KB경영연구소 ‘2023한국반려동물보고서’는 국내 반려가구가 552만 가구, 반려인은 126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7%라고 밝히고 있다. 네 집 중 한 집이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년간 10%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데는 상당한 품이 든다.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이렇게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원영 우리아이동물병원 원장·‘우리 아이 첫 반려동물’ 저자

단순히 부모 형제가 기르던 동물을 이어받아 책임감, 관성 때문에 키우는 경우도 있겠으나, 요즘은 자신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직접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어보면, 공통적인 답은 ‘즐겁고 편안하다’는 것이다. 아니, 동물을 키우면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어째서 즐겁고 편안하다는 것인가.

누구든 사랑하는 존재를 볼 때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보호자의 눈에는 반려동물이 뭘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들은 또 하나같이 천진난만하다.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그 어떤 계산, 평가, 가식, 방어도 필요 없다. 우리가 늘 불편해하는 그런 것들이 개재될 틈이 없다.

고양이가 내게 와서 쿵 부딪치는(head bunting) 순간, 내 마음의 벽이 산산이 부서지고, 강아지가 쏙 하고 품에 파고들어 나를 핥는 순간, 나 역시 녹아내린다. 갇혀 있던 내가 사라지며, 집착하던 내가 사라진다. 잠시나마 나와 나 아닌 것,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며, 경계가 됐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편안해진다.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생각을 내려놓고 완전히 이완된다. 반려동물에 매혹되는 순간은 바로 이때인 것 같다. 세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즐겁고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반려동물과 함께할 때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사는 시간이 마냥 행복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물론 즐거운 시간이 많겠지만 반려동물을 돌보는 일이 힘들고 고단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동안 몰랐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떨 때는 자신의 바닥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생소하고 때로 견디기 힘들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선물이다.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그저 감각적 만족과 통장의 잔고뿐이라면 얼마나 허전한 삶인가. 삶의 근원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가장 순수한 사랑 중 하나가 반려동물과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삶은 숱한 만남의 연속이며, 그 길에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고 연인도 있고 타인도 있지만, 반려동물들은 그 사람들과는 너무나 색다른 만남을 선사한다. 전에 몰랐던 내 모습을 보며 감격스러울 정도의 생기를 자주 느끼게 된다. 그들의 생기가 그대로 전해져 덩달아 나도 생기 있게 살게 된다. 살아 있는 그 녀석들이, 죽어가는 우리들의 한 부분을 살리고, 그래서 우리를 온전히 살아나게 한다.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라는 말이 이 뜻이 아닐까 싶다.

이원영 우리아이동물병원 원장·‘우리 아이 첫 반려동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