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영미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내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바뀐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국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고 심의하는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부위원장만 해도 장관급인데, 현재는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해 1월 임명돼 임기 2년 중 절반이 남은 상태다.
김 부위원장이 정말 그만두는지, 사유는 무엇인지 대통령실이 명확히 밝힌 건 하나도 없다. 다만 후임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고 딱히 반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교체 시점까지 거의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저고위 상임위원과 민간위원이 잇따라 사표를 던진 것, 눈에 띄는 정책은 없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 것을 두고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 별칭이 ‘불도저’였을 정도로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지닌 경제관료가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다.
● 사람 문제인가…타부처 질의해도 ‘읽씹’ 일쑤, 실권 없는 저고위
문제가 있다면 교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저고위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저고위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 조직이다. 관련 정책이 여러 부처에 걸쳐있어 한 부처가 관할할 수 없고 여러 부처와 조율이 필요할 때 만드는 게 정부위원회다. 그러나 그만큼 부처의 입지가 모호하고 실권이 없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국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뉴시스
저고위가 그렇다. 사무국에는 30명의 상임 직원들이 있지만, 각 부처 파견 인력으로 1년~1년 반 근무하고 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야 하는 ‘뜨내기 직원’이라 전문성이 없고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무국 자체 예산은 0원이다. 저출산 예산이 수십조 원이라지만 모두 각 사업 담당 부처에 있는 것이지, 저고위가 가진 게 아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신생아 특례대출’ 예산은 국토교통부, 육아휴직 예산은 고용노동부(고용보험 기금)에 있는 식이다. 저출산 사업을 발굴하지만, 각 부처에 사업을 지시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컨트롤 타워란 외양만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조직도, 돈도, 실행력도 없는 곳이 현재 저고위다.
내부에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놓았지만 획기적인 안을 내고 합의를 이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는 전문가들은 한 번 모이기도 어렵다. 각자 생각이 달라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지적이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현 김 부위원장이 지명됐을 때부터 안팎으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그동안은 ‘실권 없는 조직’이라도 ‘실권 있는 부위원장’이 있어 영이 섰는데, 이제 일개 대학교수로 부처와 전문가들에게 말발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앞서 3명의 부위원장은 모두 여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1대 김상희 부위원장은 여당 4선 국회의원, 2대 서형수 부위원장은 대통령 측근, 3대 나경원 부위원장도 4선에 여권 중진이다.
한 내부 관계자는 “기재부(기획재정부)에 사업 예산 관련 질의를 하면 ‘안 된다’, ‘어렵다’는커녕 답조차 주지 않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쳇말로 ‘읽씹(문자를 읽었지만 무시하고 답하지 않는 것) 당했다’는 건데,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3대 부위원장을 맡았던 나경원 전 의원. 뉴스1
● ‘이슈 메이킹’ 하라지만 논란, 뭇매만
지난해 가을 대통령실에서 저고위 핵심 관계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호통이라 할 수준의 매서운 질책이 있었다고 한다. 저고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것인지 지난해 말부터 저고위는 비교적 적극적인 대언론 행보를 보였다. 구상 중인 정책을 어필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토론회, 자문위도 열고, 취임 후 한동안 몸을 사리던 김 부위원장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슈 메이킹을 하자 이번에는 또 ‘상의도 없이 논의 중인 정책을 공개했다’며 부처의 불만이 쏟아졌다. 출산 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즉각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자동육아휴직제’나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다자녀 전용차로 이용’ 같은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저고위는 온전히 뭇매를 감수해야 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해 보면 전임 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으로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는데 (현 부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이라니, 될 일이 아니었다. 힘 있는 여권 중진도 그렇게 된 판에 무슨 이슈 메이킹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임이었던 나경원 부위원장은 2022년 10월 부임했지만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 사퇴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출산가정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 원금까지 탕감해 준다’는 이른바 ‘헝가리식 제도’ 도입을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했다가 논란이 커진 탓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고, 나 부위원장의 독단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 사실상 자진사퇴를 종용한 셈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모습. YTN 캡처
● 조사·연구 또 주문…“원인 몰라 해결 못 했나”
얼마 전 저고위에서도 나 전 부위원장 사퇴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전 김 부위원장이 한 언론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2월 말이나 3월 초 중 중장기 전략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위원회가 다시 ‘확정된 내용이 아님’이라며 보도설명자료를 낸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도 아니고, 기관에서 수장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부정하는 해명자료를 낸 희한한 상황이었다. 보통 기관장급 공식 인터뷰는 질문지를 미리 받아 각 부서와의 조율을 거쳐 답안을 완성한다. 즉 기관장의 답변은 본인 개인 생각이 아니라 기관의 입장이다. 그런데 기관이 기관 스스로 작성한 답변을 부정한 것이다. 정황상 내부 판단이라기보다 외부의 판단이 개입된 듯한 모습이었다.조용할 때는 조용해서, 적극 나설 때는 나서서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쯤 되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니, 우리가 춤을 춰도 되는 건 맞아요?”
사실 저고위 부위원장이 아무리 기막힌 장단을 준비해 춤을 춰봐야 ○○○이 없으면 소용없다. 각 부처가 저고위를 조율 기구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건 부위원장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위원장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저고위 활동에서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며 호통까지 쳤다는데, 막상 이슈 될 만한 정책이 다른 부처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 ‘손절(손절매·자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발을 빼는 행위)’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초 돌연 ‘저고위가 제대로 역할 하기 위해 데이터와 수치에 근거해 저출산 원인과 정책 효과를 설명할 전문가를 찾아보라’며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데이터와 수치가 없고, 전문성이 없어 저출산 원인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2차 데이터 기반 인구전략 자문회의 모습. 뉴시스
● 결정권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저고위 회의를 한 번밖에 주재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지난 정부에선 임기 내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의 관심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실제 회의 참석 여부가 아니다. 저고위가 하는 일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지원이다. 대통령이 한 번 언급하고 사인만 줬어도, 기재부가 저고위 질의를 읽씹하는 일이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이런 안팎의 지적에도 변화가 없는 걸 보며 일각에서는 “일부 자문위원들이 주장했듯 정부가 저출산 ‘극복’에서 ‘적응’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더 이상 획기적인 정책으로 저출산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가 ‘연착륙’으로 기조를 틀었고, 그래서 내부 관료, 그것도 경제관료 출신을 부위원장으로 앉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3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미 부위원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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