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에 거식증 앓기 시작한 저자… 치료와 회복 과정 생생히 그려내 해로운 완벽주의-병적 자기통제… 단순한 다이어트로 치부 말아야 ◇먹지 못하는 여자들/해들리 프리먼 지음·정지인 옮김/432쪽·2만2000원·아몬드
저자는 “너처럼 평범해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거식증에 걸려 3년간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책에서 저널리스트와 거식증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드러낸 저자는 “나에게 거식증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성에 대한 공포였다”고 털어놓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시커먼 굴 하나가 하품하듯 활짝 열렸다.”
저자는 자신의 거식증이 시작된 14세의 어느 날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체육 수업 중 같은 반 마른 친구가 던진 “나도 너처럼 평범해지고 싶다”는 말에 갑자기 자신의 몸을 혐오하게 된 것이다. 적당히 말라보이던 허벅지가 친구의 앙상한 다리와 비교하니 코끼리 다리 같고, 점심으로 먹은 스니커즈 초코바가 배 속의 멍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어 점수가 낮으면 어쩌지’가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한 소녀는 거식증의 굴로 떨어지면서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책에선 미국계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거식증 당사자인 저자가 병을 깊이 탐구한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여린 청소년의 자아와 병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담보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아가 수시로 교차한다. 이에 책 두 권을 읽는 느낌도 들지만, 자아를 넘나드는 장면이 결코 부자연스럽진 않다. 3년간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본인 경험에 더해 의사와 상담사, 자신과 같은 시기에 입원했던 다른 환자들을 인터뷰해 알맹이를 풍부히 했다.
저자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의 90%는 여성이고, 대부분이 청소년기에 발병한다. 이들은 해로운 완벽주의와 극단적 자기통제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거식증에 걸린 12세 미만 여자아이들의 비율이 늘어났단 사실에 분노한다. 거식증에 걸린 지 30여 년이 지나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현재, 묻어뒀던 불안정한 자신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공유하는 이유다.
당사자 외 거식증 환자의 부모도 이 책을 참고서로 삼을 만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딸이 거식증에 걸리면 세상은 노골적으로 어머니를 비난해 왔다”고 꼬집는다. 또 “주변 사람들이 환자의 세계를 거식증만이 중심인 세계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경계한다. 환자와 가족의 적절한 분리는 환자의 회복을 돕고 가족 전체가 병마로 굴러떨어지지 못하도록 한다.
‘내 앞에 놓인 샌드위치가 몇 칼로리일까.’ 식단과 체중에 대해 가볍게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책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낮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늘 맛없는 오트밀만을 씹던 저자의 모습과 “눈앞의 피자를 먹어도 될까” 고민하는 스스로를 겹쳐 볼 수도 있다. 솔직하지만 무겁지 않은 문체로 거식증 치료와 회복을 생생히 그려내는 게 매력이다.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병의 유전적 요인, 강박 장애와의 연관성 등 전문가들의 최신 연구도 소개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