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9년 연속 수출액 기록 경신 전 세계 132개국에 뻗어나가, 작년 수출액 10억 달러 육박… 4년 만에 2배로 뛰며 인기몰이 불닭볶음면, 먹방으로 유행… 신라면은 초당 53개씩 팔려, 매출 1조 원 기록하는 성과 고물가 美서 간편식으로 인기… 1달러에 한 끼 식사로 충분
《9년 연속 수출액 경신, K라면 펄펄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한국 음식은 불고기나 비빔밥이었다. 요즘 가장 핫한 K푸드는 단연 라면이다. 9년 연속 수출액 기록을 경신하며 글로벌 1등 K푸드로 성장했다. 어떻게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잡았는지 짚어 봤다.》
신라면을 먹는 외국인 아이들. 농심 제공
50년 넘게 한국인에게 사랑받은 라면이 해외로 빠르게 뻗어나가고 있다. 최근 4년간 한국 라면 수출 규모는 두 배로 뛰었다. 연간 수출액은 2015년부터 9년 연속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며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K팝 등 한류 인기와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바뀐 식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이다.
● 매워서 땀 뻘뻘… ‘HOT’한 한국 라면 도전기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 올라온 '불닭볶음면' 먹기에 도전하는 외국인들 영상. 유튜브 캡처
영상 속 외국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매운맛에 씩씩대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들이 용기면 하나를 미처 다 비우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로 우유를 찾는 모습은 수많은 글로벌 유튜버의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가 유행처럼 번졌다.
유튜버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열광한 전 세계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매운 라면은 ‘도전의 아이콘’이 됐다. 별다른 광고 없이도 유튜브를 통한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이 이뤄진 것이다. 2018년 3월 카타르에서는 ‘불닭 빨리 먹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에 인스턴트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일본 닛신식품은 2020년 불닭볶음면을 모방한 볶음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붉닭의 인기가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불닭 아이덴티티’를 적극 활용했다. 국가별 소비자들의 입맛을 반영한 현지 맞춤형 제품을 꾸준히 내놓은 것이다. 2014년 수출 초기부터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 할랄(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제품) 인증을 획득해 무슬림 인구가 많은 동남아 지역에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신라면 역시 한국의 ‘매운맛’을 제대로 알리는 중이다. 국내 라면 업계 1위 농심은 신라면 하나로 2년 연속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100억 원으로 전년(1조600억 원)보다 14.2% 늘어났다. 지난해만 16억6000만 개가 팔렸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1초에 53개씩 팔린 셈이다. 특히 해외 판매액이 7100억 원(58.7%)에 달했다. 신라면은 2021년부터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
일찌감치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농심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농심은 1994년 미국에 첫 해외 법인을 세운 이후 일본(2002년), 호주(2014년), 베트남(2018년), 캐나다(2020년) 등 세계 각국에 판매법인을 세워 공급망을 확대했다. 중국과 미국에 공장을 세워 생산기지도 넓혔다. 2017년엔 미국 월마트 약 4000개 점포에 신라면을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 팬데믹 지나며 4년 만에 2배로 커진 미국 라면 시장
2022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 최초 대규모 K팝 콘서트 ‘케이팝 플렉스(K-POP FLEX)’와 연계한 한국문화축제(Korea Festival)에서 외국인 방문객들이 불닭볶음면 등 국내 라면회사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삼양식품 제공
주목할 만한 건 미국 시장이다. 미국은 우선 코로나19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팬데믹 기간 식당이 문을 닫고 단체 급식이 중단되면서 집에서 식사하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조리가 간편한 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증가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경향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지속돼 라면을 포함한 간편식 수요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 증가도 여기에 속도를 더했다.
라면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라면 한 봉지 가격은 1달러 내외다. 뉴욕 등 미국 주요 대도시에서 외식을 하려면 한끼 당 10∼15달러 이상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하다. 미국에서도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라면 소비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이상 글로벌 식품 시장을 분석해 온 문경선 유로모니터 한국리서치 총괄은 “K콘텐츠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음식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 건 사실이지만 동남아 시장에서처럼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도는 아니다”라며 “최근 간편식이 라이프패턴으로 자리하며 라면도 든든한 한 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성장한 측면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 K라면, 500억 달러 규모 세계 라면 시장 노린다
국내에서 라면 소비가 둔화한 건 라면이 다이어트나 건강에 좋지 않단 부정적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대된 점이 크다. 인구 감소로 절대적인 소비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은 라면 업계뿐 아니라 모든 국내 식품 제조사가 피해갈 수 없는 걸림돌이다.
내수 시장의 한계로 라면 회사들은 더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세계 라면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433억 달러로 추정됐다. 2018년의 약 362억 달러에 비해 20% 증가했다. 2026년에는 527억 달러까지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시장의 전망이 밝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 해 소비한 라면은 2022년 기준 51억1500만 명분에 이른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평균 48억6600만 명분의 라면을 소비했다.
더욱 커지는 세계 시장에서 K라면은 계속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몇 가지 성공 조건을 꼽는다. 우선 K콘텐츠의 인기가 지속돼야 한다. 다른 나라에 대한 인식이 그 나라의 식품을 끌어들이는 마중물이 되기 때문이다. 정교한 현지화 전략도 계속돼야 한다. 한국 라면이 해외 소비자들의 입맛이나 식문화에 맞춰 상품을 충분히 오랫동안 인기 식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대찌개나 김치찌개에 면 사리를 넣어 먹기도 하고, 라면으로 라볶이와 같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며 “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라면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국 라면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