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장 인터뷰] 취임 1주년 유홍림 서울대 총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현재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입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분석해 충실한 학업 성취와 교과 과정 평가를 반영하는 전형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입시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대 같은 경우 면접을 1시간 이상씩 하면서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본다.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하버드대처럼 가는 게 아닌가 싶다”며 향후 면접 전형을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이냐는 질문에는 “입학본부의 학업 성취도 연구 결과를 반영해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이과 과목 구분을 없애고 심화 수학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입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 위주인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유 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서울대 운영 방향과 함께 무전공 선발 확대 등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2월 1일 취임한 유 총장은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육부의 수능 개편과 관련해 서울대도 정시에서 내신 비중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대 입학생을 보면 여전히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출신이 많다.
“우리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교과 성적만 보는 건 아니고 학생의 전반적 활동과 생활기록부 등을 다 본다. 또 성적만 가지고 뽑지 않기 위해 면접을 통해 학생의 태도, 품성적 자질 등을 본다. 미국 하버드대는 학생을 뽑을 때 면접 시간만 1시간이 넘는다.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다 살펴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입시는 수능 성적, 내신 등급 같은 점수화된 정량적인 지표로 이뤄지고 있는데, 결국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반고의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일반고의 학력을 더 높이겠다면 학교와 학교 간의 경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을 교육 당국에 드리고 싶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모든 학업 성취도를 공개한다. 학교 간 성취도 비교가 가능하고 학부모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사립고가 아닌 공립고 사이에서도 잘하는 학교로 학생과 학부모가 쏠린다. 이 같은 공개 및 경쟁 시스템을 통해 교사들의 노력을 독려할 수 있고 학생들의 학업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 다만 대학들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학교에 개입하지 말고 대신 지원을 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영국 교육을 개혁할 때 정부가 교과에 개입하지 않고 교사 급여를 두 배로 올렸다. 훌륭한 교사, 훌륭한 인력이 있어야 훌륭한 교육도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들이 학교로 올 수 있게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한 게 교육 개혁이었다.”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면 비인기 학과는 폐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에서 도입한 ‘팀 티칭’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이란 과목에 수의대 교수와 인문대 교수가 함께 들어가 토론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2명 이상의 교수가 한 강의실에 동시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학생들 앞에서 토론도 한다. 과목에 따라 교수 3∼5명이 한 강의실에 들어갈 때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충분히 이런 방식의 수업이 가능하다. 서울대는 2025학년도부터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학부대학’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1학년이나 1, 2학년 재학생을 본래 소속된 과·계열과 별도로 학부대학으로 묶어 다양한 학문, 전공을 공부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모든 분야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에 막상 들어와 보니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복수전공과 부전공 같은 다전공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다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30%가 넘는다.”
―의대 열풍 때문에 서울대 이공계에서도 학생이 이탈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학원의 ‘의대 준비반’도 있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과 직접 개입하는 건 다르다. 인간은 틀에 맞춰 일하는 기계가 아닌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기계처럼 보는 것 같다. 규격화와 통제 시스템에서 일찍부터 ‘의대’라는 틀에 맞춰 찍어내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부모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의 진로 및 진학의 기본 틀을 짠다. 학생의 잠재력과 능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저희 부모님은 교육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정치학과 진학을 선택한 것도 개인적 선택이었다. ‘성적이 좋으니 법대에 가라’ 같은 얘기도 일절 안 하셨다(웃음).”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과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에 참석했다. 외국에서 어떤 걸 느꼈나.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은 대학이 정부, 사회, 기업과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차원이 다른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학에 투자하고, 사회는 대규모 기부로 재정을 키워주고, 기업은 산학 협력 연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다. 반면 한국은 대학과 정부, 기업이 서로 단절돼 대립하는 구도다. 국민들도 자녀가 초중고교에 다닐 때까지는 관심이 높지만 대학 합격 후에는 대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국가의 중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다. 대학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혁신 노력을 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고등연구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취임 1년간 어떤 분야에 주력했나.
“그동안 서울대가 내부 구성원이나 사회가 봤을 때 충분히 개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는가, 미래를 준비하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는 차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2025년은 관악캠퍼스를 중심으로 대학 종합화가 이뤄진 지 50주년 되는 해다. 또 2026년은 개교 80주년이다. 또 지금은 세계적으로 공급망 위기, 복합 안보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 국가적 도전 과제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서울대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국가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또 고등교육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서울대의 역할이다. 이런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서울대에 대한 신뢰는 없어질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이런 관점에서 제도 혁신과 재정 확충 등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해 왔다. 또 관료주의적인 기존의 서울대를 네트워크형 대학, 플랫폼 대학으로 바꿔 나가려고 노력했다.”
―어떤 분야의 연구개발(R&D)에 주력하려 하나.
“먼저 서울대는 양자기술의 허브가 되려고 한다. 서울대 양자연구단은 8, 9월경 시카고대 및 도쿄대와 공동 심포지엄 개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 3개 대학 연구진 총 30명이 온라인 회의로 각 대학의 양자 연구 상황을 공유했고, 4∼5월경 구체적인 공동 연구 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7월에는 시카고대 양자과학기술 여름캠프에 양자 분야를 연구하는 이공계 학부생들을 보낸다. 지난달 18일 다보스포럼에서 세 대학이 양자 협력 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양자기술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 기후 테크놀로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도 서울대가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63)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한국정치사상학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서울대 28대 총장(2023년 2월~)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