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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합병, ‘이재용 승계’ 목적이라 단정 어려워”

입력 | 2024-02-05 14:44:00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2.5. 뉴스1


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심 공판에서 “합병 목적이 이 회장 승계권 강화라는 등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실제로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면서도 “합병은 양사의 합병 필요성 등의 검토를 거쳤기에 사업성이 인정된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합병 과정에서) 양사의 이사회를 거친 것을 보면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만이 합병의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재판부는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어 합병의 주 목적이 이 회장의 승계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검찰은 부당한 합병으로 주주들이 불이익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주가와 증권사 리포트 등을 봤을 때 (합병이)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이 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에서 이 회장의 승계 작업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미래전략실이 삼성물산 의사에 반해 이 회장의 주도로 합병을 주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 G(Governance·거버넌스)’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G에 관한 문건은 기업 검토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내부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대한 검토 종합 보고서”라며 “검찰의 주장처럼 약탈적 승계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이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 “이는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라며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한 혐의과 이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지난 2020년 9월 기소됐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에 불이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합병을 결정했고 이를 위해 허위 호재 공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주요 주주 매수, 삼성증권 조직 동원 등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 모직의 지분 23.2%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반면 당시 이 회장은 삼성그룹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의 4%가량을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합병 후 이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됐고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 승계 구조를 확실시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주도해 인위적으로 제일모직의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췄다고 의심하고 있다. 주가조작을 위해 그룹 내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허위 호재를 유포하고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의결 확보를 위해 불법 로비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불공정 합병 논란을 피하고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주가 악영향을 우려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관한 거짓 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4년 회계연도 공시 중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다국적 제약사 바이오젠 사이의 합작 계약 주요 사항을 은폐했다는 의혹이다.

이 회장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이 회장은 기소 후 3년 2개월여 만에 열린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합병 과정에서 개인 이익을 염두에 둔 적 없고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분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잘못이 있다면 제가 감당할 몫”이라며 함께 기소된 임직원 등의 선처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