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31일 오후 대구의 한 인쇄업체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완성된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보여주고 있다. 2020.3.31.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입장을 밝힘에 따라 지난 21대 총선 당시 ‘꼼수 위성정당’ 난립이 재현될 전망이다. 4년 전 총선에선 사상 처음 준연동형 비례제가 실시됐고, 35개 비례정당이 등록해 투표용지의 길이만 48.1㎝에 육박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이라며 “과거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준으로 50개의 정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돼 있고, 민주당 탈당파인 미래대연합 등 11개 창당준비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정당이 4월 총선에 후보를 낼 경우 올해에는 투표지가 50㎝가 넘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병립형 회귀를 고수해 왔다.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수를 따지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 47개를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병립형은 제20대 총선까지 적용됐으며, 제21대 총선에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위해 준연동형이 도입됐다. 준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다만 취지가 무색하게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만 우후죽순 생겨났다. 제21대 총선 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등록한 정당 수는 35개에 달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미래한국당을,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후보를 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위성정당과 비례정당이 난립하면 역대 최장 비례대표 투표용지였던 제21대 총선 때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유권자들은 48.1㎝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는 정당명부식 ‘1인 2표제’가 도입된 제17대 총선 이후 역대 최장으로 집계됐다. 제20대 총선시 투표용지 길이는 33.5㎝였다.
문제는 투표용지가 35㎝만 넘어가도 자동개표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자동개표기는 최대 34.9㎝ 길이의 투표용지 처리와 24개 정당 표기만 가능하다. 이번엔 34개정당까지 표기할 수 있도록 분류기 개선 작업을 벌였지만, 정당이 35개 이상일 경우 전량 수개표해야 하는 상황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서 기계를 안쓰고 손으로 일일이 개표했다”면서 “분류기를 사용하면 일단 같은 번호끼리는 걸러지기 때문에 시간도 빠르고 개표 작업이 수월한데, 수작업으로 하면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리고, 특히 비례대표 용지가 40㎝가 넘어가면 투표 상황을 한눈에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개표 사무원의 피로도도 훨씬 높아진다”고 전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현행 선거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재명의 이익 실현을 위한 선거제도”라고 직격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례대표 제도를 갖고 게리멘더링(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선거구를 정하는 일)하는 건 처음 봤다”면서 “서로 간에 어떤 의석수를 나눠먹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이 선거제를 밀어붙일 경우 의석수가 적은 국민의힘은 민주당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이번 총선은 현행대로 선거를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더이상 추가적인 논의가 없다면 민주당이 현행 공직선거법 그대로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선거법 관련 협의는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