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벌써 트럼프 재집권 대비책 마련 중 트럼프 2기땐 동맹에 더 강해지라고 요구할 것 韓, 국방 강화-대미투자 강조하는 협상책 필요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미국 대선까지 딱 9개월 남았다. 정치에선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긴 기간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일단 승기를 잡은 양상이다. 트럼프가 깜짝 승리한 2016년과 달리 지금 국제사회는 트럼프의 귀환을 예상하며 미리 대비하고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대로 “트럼프는 이미 국제정치를 바꾸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우선 트럼프 2기의 대북 정책이 관심사다. 다시 “화염과 분노”로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갈지, 아니면 또 “러브레터”를 교환하며 김정은과 섣부른 핵협상을 재개할지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2017년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됐을 때 트럼프는 한국에서 미국 시민 소개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위협은 전쟁용이 아니라 협상용이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고 핵 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협상을 할 것으로 예측한다.
톱다운 협상은 트럼프의 거래주의를 고려하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트럼프가 ‘빅딜’로 북핵 문제는 덮어놓고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다. 북-미 관계 개선으로 북-중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당시와 달리 진영화된 신냉전의 국제질서에서 북한은 중-러 진영과 명운을 같이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에 더는 매력적이지도 시급하지도 않다. 하노이 노딜의 굴욕을 생각하면 김정은이 선뜻 정상회담에 나서기도 어렵고, 전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가 미-북 사이 거간꾼 역할을 할 리도 없다.
이에 비해 새로 발족한 한미일 안보협의체는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화도 잘 안 되어 있고, 한미일 3국에 강력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지도 못하다. 트럼프는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조 바이든의 정치적 업적으로 간주할 것이고, 따라서 후속 조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선언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경제안보, 공급망, 통상·산업 정책의 지식재산권을 주장한다. 바이든의 성과가 아니라 자신의 정책을 바이든이 따라 했다는 논리다. 그런데 잘못 따라 했기 때문에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대폭 수정할 것이고, 한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은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정유와 조선업에는 기회가 올 수 있다.
동맹 간에도 자국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협상한다. 자칭 협상의 달인 트럼프와는 더 영리하게 협상해야 한다. 줄 것은 주되 지킬 것은 지키자. 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국가이익과 이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차등화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안보에만 도움이 된다면 방위비는 한국이 전액 부담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줄 것은 주되 적시 적소에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그동안 트럼프가 동맹에 요구하는 것들을 많이 했다. 국방비를 많이 쓰고 있고 굳건한 방위산업도 구축했다. 대미 투자도 많이 했다. 이를 정리한 목록을 준비해 당당히 협상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이전의 성과 외에도 트럼프의 업적이 될 수 있는 향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 내 조선업 육성과 이와 연관된 해군력 강화에 큰 관심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조선업 진출은 한미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협상은 하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가 북핵을 용인하는 빅딜을 밀어붙이면 대미 여론이 악화하며 균형외교론이 다시 대두될 수 있다. 하지만 중립은 답이 아니고 중국 경사는 최악의 선택이다. 한미동맹의 테두리 안에서 핵잠재력 강화 등 자강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트럼프는 동맹에 더 강해지라고 요구한다. 자강할 때 트럼프는 한국을 더 존중할 것이다. 최근 면담한 트럼프의 측근은 필자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