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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약’ 찾는 美 젊은층… “중독 개념 뿌리째 흔들려”

입력 | 2024-02-06 03:00:00

‘절제’라는 단어, 금주 의미로 축소
“마약류 관대해지는 분위기 우려”
“덜 위험한 중독 허용” 의견 맞서




“‘약’은 하지만 ‘술’은 끊었으니 저는 금주(sober) 상태예요.”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의 택시 운전사인 해군 퇴역 군인 마이크 리드 씨(43)는 2011년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다. 취할 때마다 폭력을 휘두르던 그에게 지인들이 “또 주정을 부리면 인연을 끊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다른 것을 시작했다. 여동생이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던 2020년 리드 씨는 대마초에 손을 댔다. 최근에는 전신마취용 약품 케타민을 흡입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최근에는 환각 효과가 있다는 버섯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리드 씨는 여전히 자신을 “금주 중인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4일 뉴욕타임스(NYT)는 리드 씨처럼 술은 마시지 않되 환각제를 쓰는 사람이 급증하는 현상을 조명하며 ‘중독’에 대한 고정관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절제’라는 단어의 의미가 모든 중독성 물질을 끊는 것을 뜻했지만, 요즘에는 술만 끊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일부 마약성 약물은 아예 ‘건강 증진제’로 홍보된다. 일부 주(州)가 대마초 등에 관한 규제를 완화한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에 따르면 2022년 19∼30세 성인 중 “최근 1년간 대마초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4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젊은층의 음주율은 20년째 하락세다. 보건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 해 전보다 음주율 감소 폭이 가장 컸던 연령대는 21∼25세였다.

이런 현상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한창이다. “마약류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대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우려한다”는 의견과 “더 큰 중독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중독은 허용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맞선다.

특히 현실론을 외치는 사람들은 아편계 진통제 ‘오피오이드’, 최근 미 전역에서 남용이 심각한 ‘펜타닐’ 같은 합성 마약의 유해성을 감안할 때 이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의료용 대마초의 사용은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때 오피오이드 중독자였던 매사추세츠주 의사 피터 그린스펀 씨는 “중독자들에게 완전한 금욕을 강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의료용 대마초가 중독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약물중독 분야 비영리단체 ‘헤이즐든 베티 포드’ 재단의 조지프 리 대표는 “약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약물 사용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마약류에 관대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중독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