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명 사망 튀르키예 강진 1년 아디야만-말라티아 정착촌 르포 파손건물 4만 채 중 약 85% 정리… 철거 흙먼지가 주민들엔 되레 희망 “형제의 나라 한국 도움에 감사”… 새 주거단지 주택 이달부터 입주
컨테이너 가득한 정착촌… 소녀 티셔츠엔 “긍정을 퍼트려 봐” 3일 튀르키예 남동부 도시 말라티아 임시정착촌의 주거 공간인 컨테이너 앞에 이재민들이 사용하는 건조대와 자전거, 유아용품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위쪽 사진). 1년 전 강진으로 대참사를 겪은 튀르키예는 아직 39만 가구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4세 소녀 미라지는 한글로 ‘긍정을 퍼트려 봐’라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활짝 웃어 보였다. 말라티아=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일곱 살 소년 타하는 축구 선수가 꿈이다. 지금도 매일 친구들과 정착촌 골목에서 공을 차며 논다. 언젠가는 TV에서만 본 ‘큰 운동장’에서 뛰어보고 싶다. 어른들이 한숨짓는 ‘이재민의 고통’은 잘 모르지만, 7평(약 21㎡) 남짓한 컨테이너에 가족이 한데 모여 사는 생활은 그에게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래도 타하는 “조만간 새 주거단지에 들어갈 거래요. 그날이 너무 기다려져요”라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2월 6일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년 전 이날 규모 7.8의 강진이 몰아쳐 81개 주(州) 중 18곳이 피해를 입었다. 5만3537명이 숨지고 10만여 명이 다친 데다 경제적 손실도 1000억 달러(약 133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이언스지는 지난달 논문에서 지역에 따라 지표면이 2∼6.7m 수평으로 이동했다는 연구 결과를 전했다.
● 폐허가 일상… “아이들 웃음소리가 위안”
아디야만시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가 빠진 것처럼 무너진 건물 터가 휑했고, 그나마 남은 건물들도 금이 갔거나 벽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재건 중인 건물은 아직 뼈대만 올린 상태였다.하지만 주민들은 이제 ‘삶의 순리’를 받아들인 듯 친절하고 평온했다. 부서진 창문을 천으로 가려둔 채, 가까이 다가가면 밖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어 보였다. “함께 사진 찍자”며 반기는 이도 적지 않았다. 뭣보다 어린이들은 생활고에 지친 주민들에게 큰 힘이 돼주고 있다. 빽빽하게 늘어선 컨테이너 사이로 공 차고 자전거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곳이 참사 피해지란 걸 잠시 잊게 했다.
앞서 3일 찾은 말라티아시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주 당국에 따르면 복원 작업이 속도를 내며 파손 건물 약 4만 채 중 85%가 정리됐다. 다만 대규모 철거가 이어지다 보니 도시 곳곳이 흙먼지로 뿌옇게 덮여 있었다.
그래도 매캐한 흙먼지는 주민들에게 다시 삶을 일으킬 희망의 상징이다. 임시 정착촌에서 만난 세팀 아포한 씨(47)는 “세계에서 도와준 덕분”이라며 “특히 형제의 나라 한국에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수줍은 미소를 지닌 네 살 소녀 미라지는 한국에서 보낸 듯한 ‘긍정을 퍼트려 봐’가 한글로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 이달부터 이재민 새집 입주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3일 또 다른 피해지역인 하타이주를 방문해 직접 추첨을 진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앞으로 두 달 동안 7만5000채의 집이 이재민들에게 인도된다”며 “올해 안에 총 20만 채의 주택을 인도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재민 39만 가구 중 19만 가구는 다시 또 1년을 버텨야 한다.
희망의 싹은 틔웠지만 아직 과제는 잔뜩 쌓여 있다. 1년째 말라티아 정착촌에 머물고 있는 세브다 씨(31)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 부족해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크라누르 양(12)은 “당뇨병을 앓는 어린 동생을 위한 의료시설이 간절하다”고 소망했다.
아디야만·말라티아=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