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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심당’, 양양 ‘서피비치’에서 찾는 로컬의 미래

입력 | 2024-02-07 03:00:00

[트렌드 NOW]
제주에서 3년간 팝업 연 샤넬… 정주인구에만 의지해선 안 돼
머물고 싶은 ‘앵커스토어’ 필요… 지역만의 차별화 매력 발굴
서울 성공모델 모방 안 통해… 광역 교통 발전 또 다른 기회



지방에서 인구를 모으려면 지역만의 대표 가게인 ‘앵커스토어(anchor store)’가 필요하다.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은 대전 이외의 지역에는 지점이 없어 성심당 빵을 사려는 이들은 대전을 방문해야 한다. 성심당 홈페이지 캡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자 국가별로 운영하는 지점 수를 제한하는 매장 총량제를 운용하고 있다. 웬만큼 인구가 많은 도시가 아니라면 신규 출점을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이 콧대 높은 브랜드가 3년 연속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도다. 2021년부터 매년 짧게는 4개월부터 길게는 8개월, 샤넬은 제주도에서 팝업스토어를 선보이고 있다. 왜 하필 제주도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비록 인구수는 다른 도시에 밀릴지 모르지만,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장소이기에 전국구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지방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한 지역에 머무르는 ‘정주인구(定住人口)’가 중요했다. 한 도시의 인구 규모가 크면 매장을 내어주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 인구는 이제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런 인구 감소 시대에는 지방의 경쟁력을 정주인구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전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력을 뽐낼 수 있는지가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한다.

강원 양양을 예로 들어보자. 양양의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45%이고 2030세대 인구 비율은 14%이다. 총인구는 2만7822명에 합계출산율 0.88명으로 정주인구의 개념으로 보면 양양군은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한 곳이다. 하지만 방문객 기준으로 보면 반전이 있다. 성수기 휴가철이었던 2023년 8월 31일을 기준으로 그날 하루 서핑과 파티를 즐기러 양양에 놀러 온 외지인 수는 거주인구의 1.6배가 넘었다.

인구 감소의 시대, 지방으로 더 많은 인구가 흘러들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찍는 그 지역만의 대표 가게, 즉 ‘앵커스토어(anchor store)’가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양양이 서핑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2015년 박준규 대표가 설립한 ㈜라온서피리조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두 개의 컨테이너에서 시작된 ‘서피비치’가 젊은이들을 양양으로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전의 ‘성심당’ 빵집도 마찬가지다. “대전 이외의 지역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다”는 확고한 경영 철학 때문에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무조건 대전을 방문해야 하고, 성심당에서 빵 쇼핑을 마친 김에 대전 여기저기를 관광한다.

둘째, 작은 지역의 매력을 발굴해야 한다. 2023년 11월, 배달의 민족이 약 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는 “가게나 메뉴 이름에 지역명이 포함되고, 특산물을 이용하는 식당을 보면 기대가 생긴다”고 응답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해당 지역이 작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을지로 맛집으로 부상하고 있는 ‘산청숯불가든’은 지방의 유명 대도시가 아닌 ‘경남 산청’이라는 지명을 사용해 인기를 얻었다. 산청에 방문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왠지 모를 매력에 이끌려 식당을 찾는다.

신상품 콘셉트도 작은 지역에 집중한다. 스타벅스코리아가 2023년 11월 선보인 ‘옥천 단호박 라떼’, 편의점 GS25가 2024년 1월 선보인 경북 상주산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 드라이’, CU가 2023년 7월 출시한 ‘진도 대파버거’는 모두 옥천·상주·진도와 같은 지명으로 성공을 거뒀다.

광역 교통의 발전은 대한민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든다. 올해부터 줄줄이 개통을 앞두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전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고속철도(KTX)와 수서고속철도(SRT)는 한국을 하나의 도시 국가로 변모시킬 것이다. 이런 시대에 다른 도시의 성공 모델을 무작정 베끼거나, 서울에서 성공한 모델을 축소해 지방에 옮겨놓는 사업은 앞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100개의 지방이 서로 다른 100가지 매력을 뽐낼 수 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불균형 발전과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이 시대, 수도권과 비수도권, 혹은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경직된 이분법을 넘어 지역 간 인구의 물 같은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