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패션 브랜드는 자신을 각인시킬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로고와 폰트, 쇼핑백, 매장 인테리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까지 사람들의 감각이 닿는 부분이라면 무엇이든 통제하여 일관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구찌 제품을 구입했다는 걸 뽐내고 싶어도 사람들이 구찌를 모르면 소용없다.
특정 색상의 사용은 아주 전통적인 방식이다.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오렌지나 티파니의 블루는 오랜 시간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각인이 되었다. 사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색과 브랜드를 연결한다는 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그래도 연결이 잘되면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진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이렇게 색상이 다시 활용되는 건 패션의 변화 덕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고급 패션에서 바람막이와 스니커즈 같은 스트리트 패션이 주류를 이뤘고, 따라서 시그니처 컬러 같은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은 눈에 띄기 어려웠다. 더 자극적인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커다란 로고, 프린트가 많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최근 패션에서 다시 조용한 럭셔리 등 섬세함,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색이 돋보일 여건이 마련됐다. 발렌티노의 핑크, 보테가 베네타의 그린처럼 작은 규모로 색상을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의 홍수 속 ‘과잉 트렌드의 시대’에 신선한 시사점을 던진다. 진중하고 은은한 브랜드 각인 방식의 재등장이 과잉 시대에 얼마나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