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불우한 성장 과정 겪은 부모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어린 시절 부모가 소리 지르는 것이 너무 싫었던 사람은, 자신은 아이를 낳으면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부모가 쉽게 때리고 매를 들었던 사람은, 자신은 부모가 되면 절대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무심하고 아이의 생활에 무관심해서 상처받았던 사람은, 자신은 아이에게 다정한 부모가 되려고 한다. 부모가 너무 바빠 빈자리가 컸던 사람은, 아이에게 되도록 자상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로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이를 그 방식대로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때 나는 부모가 미웠다. 부모의 그런 행동이 싫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종 “좋은 가정을 가져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이 두려워요”, “좋은 부모를 가져 보지 못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 두려워요”라는 말을 듣는다. 나의 어린 시절이 너무 아프고 불행했기 때문에, 내 아이가 나처럼 불행할까 봐 두렵다는 말일 것이다. 이해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는 것이다. 부모와의 좋은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해도 아이와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자신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의 알아차림이 있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나’는 이미 부모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이는 내 배 속에서 나왔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아이 유전자의 반은 완전히 낯선 사람, 배우자에게서 왔다. ‘나 같은 아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아이가 나와 똑같을 것이라는 지나친 두려움에서 한 발 나와도 된다.
몸으로 체득한 것이 없는데, 보고 배운 것이 없는데 잘 키울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양육은 방법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다. 방법은 배우면 된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 마음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 아이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도 나의 부모와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 없고 불확실하고 두려운 것에서부터 나오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나’는 나의 부모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출발이 다르니 결과도 당연히 다르다. 출발의 방향이 1도만 달라져도 똑같은 길로 가지 않는다. 최종 도착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나의 부모가 나를 키운 방식과는 한참 다른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찾았으면 한다. 안정감을 찾으면 좋은 방법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