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나건 말건 기소하고 본 윤석열 검찰 이재용 삼성 합병, 양승태 사법 농단 무죄 수사 논공으로 이미 검찰공화국 완성됐고 뒤늦게 책임 물을 방법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일본의 검찰 신뢰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일본 검사는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날까 전전긍긍이다. 무죄가 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죄를 다루는 특수부 검사일수록 사건마다 목숨을 거는(一生懸命) 자세로 임한다. 그래서 기소가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 검사는 기소해서 무죄가 나도 ‘아니면 말고’다. 특수부일수록 더하다.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검찰의 특수부가 거악(巨惡)과 싸우던 멋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재벌 수사는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찾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사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때부터 재벌 개혁을 내걸고 배임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서양에선 배임을 형사 범죄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기업을 털면 안 걸릴 기업이 없다. 중수부가 졸렬해졌고 그때부터 폐지론이 제기돼 한참 후이긴 하지만 폐지되기에 이른다.
윤석열 한동훈 두 사람은 박영수 밑에서 수사를 배웠고 이복현 또한 그들 밑에서 배웠다. 중수부 폐지 이후의 특수 수사는 ‘외과수술식 수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검찰주의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과 좌(左)동훈 우(右)복현 체제에서는 저인망식으로 혐의가 걸릴 때까지 수사하고, 걸 수 있는 혐의는 모조리 기소하는 방식이 주(主)가 됐다.
삼성 합병 무죄는 단지 그 사건의 무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인 뇌물죄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부당한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을 위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뇌물죄 혐의의 대강이다. 뇌물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논리는 명시적 청탁은 없었더라도 현안이 있는 기업과 권력자 사이에 금전이 오간 이상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논리이지만 설혹 그 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삼성 합병 무죄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현안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윤석열-한동훈 조(組)의 수사가 최소한의 절도마저 잃고 남용 가까이 치달은 것이 사법 농단 수사다.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와해를 시도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주장으로 불을 붙이고 검찰이 받아쓰기하듯 기소했으나 법원의 무죄 판결에서 보듯 사소한 시빗거리였을 뿐이다.
윤석열-한동훈 조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개입 등 재판 관여까지 새로 엮어서 양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몰이에 들어갔었다. 그들은 박영수와 함께 삼성 현대차 SK 등 힘 있는 재벌 총수란 총수는 다 잡아봤고 대통령까지 잡아봤다. 못 잡아본 사람이 하나 있다면 대법원장이었다. 법원은 늘 검찰에게는 갑이었다. 대법원장마저 잡아서 모든 권력이 검찰 아래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고서는 그 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권력에서 독립해 수사하게 됐으나 검찰 내부의 수사 기강이 무너지면 그것은 검찰공화국으로 통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이 분명해졌다. 검사가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검사가 뒤늦게 무죄가 된 사건으로 대통령도 되고 법무부 장관도 되고 금감원장도 되고 법무부 장관을 토대로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도 되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