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백 한투운용 중소가치팀장 “정치권 주주가치 제고 정책들 알맹이 없이 표제어만 던진 상태”
“‘테마주 공화국’에서 증시는 우상향할 수 없습니다.”
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만난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펀드매니저 겸 중소가치팀 팀장(사진)은 한국 주식시장을 ‘테마주 공화국’에 빗대며 이같이 말했다. 2009년 금융업에 뛰어든 김 팀장은 업계에서 ‘기업 탐방왕’ 또는 ‘걸어다니는 리서치 센터’라 불린다. 지금까지 1100개가 넘는 기업들을 직접 발로 뛰어 찾아다니며 지독하게 분석해내 얻은 별명이다. 그 결과 그는 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소외된 중소형 우량주 발굴 및 투자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 거듭났다.
정부가 기업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달 발표하기로 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들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김 팀장은 “이번 열풍은 길어야 한두 달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핵심은 PBR이 아니다”라며 “테마주처럼 저(低)PBR이 마치 하나의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단순히 PBR이 낮은 기업들의 PBR을 높여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시킬 거란 생각은 굉장히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주식시장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의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게 김 팀장의 시각이다. 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조짐들이 비로소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주주연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변화, 정부가 주도하는 제도적 변화, 의사 결정의 주체인 기업의 변화 등 3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주주가치 제고 정책들에 대해서는 “표제어만 던져졌을 뿐 알맹이는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어디까지 기업에 강제성을 부여할 것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등 세세한 내용에 대해 국민이자 주주로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국민의 투자 의식 수준이 성장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자본시장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