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19개 혐의 전부 무죄에도 檢 ‘기계적 항소’ 강행 시사 논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56)이 부당 합병 의혹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항소를 시사하면서 무리한 항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이 외부 전문가 등 일반인으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뒤집고 기소를 강행하고도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여론과 법리 등 두 번의 재판에서 모두 진 것”이란 평가마저 나온다. 특히 재판부가 검찰이 내놓은 핵심 증거를 배척하면서 이 회장의 19개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결한 만큼 ‘검찰이 오기 항소하지 말고 사건을 일단락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 제기된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의 1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서버 자료에 대해 “위법하게 취득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9년 수사 당시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본사는 물론이고 공장까지 압수수색했다. 인천 송도 공장 바닥을 뜯어내 18TB(테라바이트) 분량의 백업 서버 등을 확보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 주거지 인근 창고에선 NAS(네트워크 결합 스토리지) 서버 등을 확보했다. 당시 서버를 숨긴 보안담당 직원과 삼성전자 임원 2명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하는 등 검찰은 증거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사심의위-1심 모두 완패한 檢… 법조계 “오기 항소 안돼”
“이재용 무죄, 檢 항소 무리”
법리-증거능력 등 모두 인정 안돼… 법조계 “항소해도 뒤집기 힘들것”
항소-상고땐 李 10년이상 ‘사법족쇄’
이원석 총장 “기계적 항소 지양” 약속… 尹도 총장때 “항소 세밀히 검토” 지시
재판부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졌다는 검찰의 공소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두 회사의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고, 설사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했다고 하더라도 주주에게 손해가 가지는 않았다는 취지다. 이처럼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는 검찰 공소사실의 대전제가 무너지면서 △분식회계 △허위정보 유포 △시세 조종 등의 혐의도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다.법리-증거능력 등 모두 인정 안돼… 법조계 “항소해도 뒤집기 힘들것”
항소-상고땐 李 10년이상 ‘사법족쇄’
이원석 총장 “기계적 항소 지양” 약속… 尹도 총장때 “항소 세밀히 검토” 지시
법조계에선 이 같은 이유로 검찰이 항소해도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많다. ‘증거 재판’과 ‘법리 재판’에서 모두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범죄 혐의가 발견돼 책임자를 규명하는 수사가 아니라, 사람을 타깃으로 정해 놓고 범죄 혐의를 찾아간 수사였다”며 “기업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비롯된 것이라 항소해도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항소 시한은 명절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13일 밤 12시까지다.
● 검찰총장, “기계적 항소 지양” 약속
실제 이 총장 취임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5900원 족발세트 횡령’ 사건(1심 무죄), 중증장애인 딸 수면제 살해 사건(1심 집행유예) 등에서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이던 2019년 8월 “항소나 상고는 세밀하게 검토하고, 가능성이 없다면 기소된 사람이 2, 3심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잘 판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이 회장과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더 장기화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 회장의 재판은 3년 5개월간 107회(선고 공판 포함) 열렸고, 이 회장은 법정에 96회 출석했다. 만약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6∼7년간 더 진행된다면 검찰 수사 시간(1년 9개월)과 재판 기간을 모두 포함해 10년 이상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수도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팀을 배제하고 총장이 결단해야 한다”며 “판결의 변경 가능성이 없다면 항소 포기 결정을 내리면 된다. ‘오기’로 항소해서 두 번 비판받는 길을 가선 안 된다”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무죄’가 나온 만큼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 항소 시한 13일 자정
검찰 내부에선 항소심에서 압수물의 증거능력을 다시 다퉈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증거물이 배척돼 무죄로 이어진 만큼 법원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하지 않고 협의를 통해 증거를 선별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폴더마다 자체 보안 프로그램이 걸려 있어 삼성 측 동의 없이는 폴더를 열어볼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검찰 일각에선 ‘국정농단’ 재판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이 인정되고, 금융감독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인정했던 만큼 항소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승계 작업과 관련한 대법원 확정판결과 사실관계 판단이 조금 다른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도 면밀히 검토하면서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항소를 안 하고 무죄가 확정되면 검사들이 ‘사건평정’을 낮게 받을 수 있어 항소할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도 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