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적 대화의 기술[1]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듣기 거북한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화목한 대화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취직했니?”
“애인은 있니?”
“결혼 언제 할 거니?”
“애는 안 낳니?”
“둘째 생각은 없냐?”
(…)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안부를 묻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안부를 가장한 잔소리 공격을 받는 처지에선 딱히 뭐라 답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포털에 ‘명절 잔소리 대처법’을 검색하면 각종 방어 전략이 나온다. “취직했니?”라는 질문엔 “노후 대비는 하고 계세요?” “이번에 진급하셨어요?”라고 응수하라거나, “애인은 있니?”라는 물음엔 “결혼할 테니 집값 1억만 보태주세요”라고 답하라는 식이다.
가족 간 대화가 아니라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암만 애정과 관심이 담겼다 해도 민감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애초 의도와 달리 서로에게 찜찜함만 남기는 대화로 끝나기 쉽다.
직설화법, 쓸데없는 참견으로 여겨질 수도
상대방에게 조언해주고 싶더라도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인 조언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구체적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도, 상대방 입장에선 “너 잘못하고 있다” “지금 넌 틀렸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을 택해야 한다. 이 미묘한 경계선을 지키지 않으면 도움을 주고도 “오지랖 넣어 두시라”고 비난받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니얼 볼저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조언해줄 때 어떻게 말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대학생 실험 참가자를 모집해 마약, 낙태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주제로 대중 강연을 준비하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 내에 의견을 글로 정리하고,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강연 준비에 조언하는 도우미를 한 명씩 붙여줬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직설적인 말투로 조언하는 도우미를, 나머지에는 같은 내용이라도 완곡하게 조언하는 도우미를 짝지어 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직설적 조언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세요.”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보통 이런 경우에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같은 내용을 전달했지만, 뉘앙스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연구팀은 강연이 끝나고 나서 참가자들이 강연 준비 기간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직설적 조언을 받은 사람들은 완곡한 조언을 받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3배 더 상승했다. 연구팀은 “직설적 조언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됐다고 지적받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래서 자존심 상한다고 느꼈고, 상대방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했다”고 분석했다.
오지랖보다 침묵이 낫긴 하지만…
표현을 정제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침묵하는 게 낫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면 이쯤에서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네?”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다. “살 좀 빼라” “그래서 연애하겠냐?” 같은 조언이 아닌 비난에 가까운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은 조언을 하는 상황에선 조금 다르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볼저 교수 연구팀의 또 다른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연구팀은 앞서 실험과 같이 강연을 준비하는 상황을 조성했다. 이번에는 배정되는 도우미 조건을 △직설적 조언 △완곡한 조언 △아무 조언도 하지 않음 3가지로 나눴다. 그리고 각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이 강연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느꼈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는 아래 그래프와 같다.
초록색 표시는 직설적 조언을 들은 그룹의 스트레스 상승 지수, 빨간색 표시는 완곡한 조언을 들은 그룹의 스트레스 상승 지수다. 가운데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은 그룹의 스트레스 상승 지수다. 성격과 사회심리학 저널
앞서 실험과 비슷하게 직설적 조언을 받은 그룹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런데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그룹은 도우미가 침묵한 그룹이 아니라, 완곡한 조언을 받은 그룹이었다. 왜 그랬을까?
“잘될 거야” vs “고생 많다” 어떤 말이 좋을까?
“힘내” “잘될 거야” “툭툭 털어버려” 등의 말은 좋은 의도를 담고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공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실패 경험으로 자존감이 하락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잘될 거야” 같이 긍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신의 힘든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여기게 된다. “별것 아니다” “털어 버려라”라는 조언도 듣는 사람은 자신의 힘든 처지를 상대방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험을 망친 조카에게 “고작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하기보단, “열심히 노력했을 텐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겠다. 고생하고 있다” 등 그의 속상한 마음에 공감해 주는 화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힘내” 같은 공허한 응원보다 상대의 힘든 상황에 공감해주는 한마디가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참가자 일부에게는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네 얘기를 들으니 나도 정말 화난다” “만약 내가 너의 입장이라도 정말 기분이 나빴을 거야” “그걸 감당하느라고 고생했겠구나”라며 힘든 감정에 공감하는 말을 건넸다. 나머지에는 “그게 그렇게 별일은 아니야”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적어도 이번 일을 통해 너는 뭔가를 배웠어”라고 긍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말을 했다.
그 결과 힘든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은 긍정적 위로에 그다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대화에 더 참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힘든 마음을 공감받은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 실험 파트너와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상대의 떨떠름한 반응, 내 기분에도 영향 미쳐
이쯤 되면 ‘대화하는데 고려해야 할 게 왜 이리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메리골드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대화는 내 기분과 자기효능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내 나름의 관심과 애정으로 대학, 취직, 결혼, 출산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조언했다고 쳐보자. “제가 알아서 해요”라는 조카의 떨떠름한 반응으로 인해 나의 관심이 무시당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만약 상대가 내 관심을 감사해하고,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내가 도움이 됐구나”하는 생각으로 자기효능감이 올라갈 수 있다. 그 반대 상황이라면 거절당하는 느낌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고 자기효능감은 떨어진다.
연구팀은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이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 조언을 튕겨내는 상대를 비판하는 대화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좋은 대화할 기회는 물 건너가게 된다는 의미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어떤 말을 들을 때 기운이 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DB
이처럼 의도를 빗나간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날 수 있다. 세 가지만 기억하자.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 말투보단 완곡하게 표현하자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이 좋지만, 자신 없다면 그냥 침묵하자 △“힘내” “잘될 거야”란 말에 앞서 힘든 마음에 공감부터 해주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