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땐 EU 디지털세 첫 타깃 우려 트럼프 승리 가능성 공식 평가 나서 美 4위 수입국 獨, 작년부터 대비 외교장관, 공화당내 친독 인사 포섭
유럽연합(EU)이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에 대비해 ‘무역전쟁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구글, 아마존 등 미 빅테크 기업이 본사가 속한 미국뿐 아니라 실제 매출을 올린 유럽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는 ‘디지털세’ 등이 보복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등 미국과의 무역전쟁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처럼 유독 무역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특히 일찍이 무역전쟁 대비를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외교장관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미국을 직접 찾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속한 야당 공화당 인사들을 접촉하며 ‘친독 인사’들을 포섭하는 모습이다.
● EU “징벌적 무역 대응책 마련”
EU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EU를 겨냥한 관세 등 강압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EU 회원국들이 미 빅테크를 겨냥해 도입하고 있는 디지털세가 첫 보복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디지털세는 빅테크들의 온라인 광고, 데이터 판매 등 매출의 2∼7%가량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미국은 이런 세금이 자국 빅테크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불만을 품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유력한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5일 동아일보·채널A 인터뷰에서 “유럽은 미 테크 기업을 규제하면서 왜 중국 테크 기업이 하는 일에는 눈을 감느냐”면서 “유럽이 미국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EU는 트럼프 1기를 교훈으로 삼아 만반의 준비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EU를 ‘지옥’이라고 일컬으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적용하는 등 무역 공격을 가했다. 미국의 EU에 대한 무역적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00억 달러(약 266조 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측이 볼 때 ‘불공정 무역 관행’의 요건에 해당하는 셈이다.
● 獨, 지난해 4월부터 트럼프 인사 접촉
제조업을 기반으로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은 미 대선 1년 전부터 트럼프발(發) 무역전쟁 대비에 들어갔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해 4월 “정부 외교 관리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 등 독일 고위 관리들은 지난해 9월 공화당의 텃밭인 미 텍사스주 등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우리는 순진해선 안 된다”며 “독일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했다. 독일은 지난해 기준으로 멕시코, 중국, 캐나다에 이어 미국의 4위 수입국이다.
독일 정계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하엘 링크 독일 자유민주당(FDP) 의원은 슈피겔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첫 임기 때보다 독일, 유럽, 세계에는 더 큰 도전”이라며 “미 대선 대응이 내 주요 업무가 돼 미국을 더 자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 상원 의원 개개인은 법안 통과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상황이 어려워질 때 우리의 중요한 동맹자가 될 수 있다”며 포섭 의지를 드러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