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선임 때마다 내부 고발, 외부 입김에 흔들려 승계 프로그램 만들고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해야
박형준 산업1부장
지난해 12월 개각을 앞둔 때였다. 언론에서 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하마평을 쏟아냈다. 당시 특정인의 비리를 고발하는 제보를 몇 차례 받았다. ‘카더라’ 수준의 내용도 있었고, 국정감사 때 언급됐던 내용의 재탕도 있었다. 모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고, 제보하는 의도도 너무나 뻔했기에 각종 제보는 참고만 했다.
소유 지분이 잘게 분산돼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뽑을 때도 온갖 제보가 밀려든다. 현재 새 사장을 뽑고 있는 KT&G는 그런 제보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사내 깊숙한 자료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필시 특정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자료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 아직 조사 중이어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 등까지 기사화되면서 KT&G의 기업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다.
소유분산기업은 정부 입김에도 강하게 흔들린다. 2022년 말 금융 당국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거를 앞두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시 회장의 퇴진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KT도 작년 새 사장을 선임하기 전에 9개월 동안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간섭을 받았다. 새로 선정된 사장이 여당의 집중포화를 맞아 자진 사퇴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KT는 5개월간 수장 없는 권력 공백기를 보냈다. “흔들기만 하지 말고 차라리 누구를 선임하라고 지시를 줬으면 좋겠다”고 KT 내부 인사가 하소연할 정도로 KT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문제점을 바로잡겠다고 새 대표 선임 때마다 소유분산기업을 마구 흔들어선 곤란하다. 그 기업은 내부 총질, 외부 입김을 막느라 온 에너지를 다 소비해야 한다. 얼마나 소모적인가.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해법은 기업 내부에 있다. 우선 사내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별 외풍 없이 새 회장을 선출한 KB금융지주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KB금융지주는 부회장 순환 보직 시스템을 정착시켜 그들의 경쟁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한다. 회장 후보군이 사실상 정해져 있고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으니 의외의 인물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여지가 적다. 삼성그룹 CEO들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고 육성하는 게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과거는 CEO 레벨의 업무였지만 지금은 팀장급까지 내려왔다.
또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보통 경영진으로 구성되는 사내이사와 달리 사외이사는 회사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경영진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사외이사를 만들려면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높은 전문성을 가진 이를 선임하며,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 사외이사가 개혁하겠다고 기업을 흔든다면, 그건 흑심을 품은 외부인이 기업을 흔드는 것과는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