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언리 ‘미술관장’(Art Museum Director), 2022, Oil on canvas, 250 x 200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누군가를 마주할 때보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외삼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가 그랬습니다. 유쾌한 멋쟁이로 어릴 적 기억에 남았던 그가 두고 간 집을 정리할 때 쏟아져 나오던 온갖 잡동사니들. 낡은 낚시 모자, 지포 라이터, 짝이 맞지 않는 그릇더미, 베란다에 쓸쓸히 놓인 화분들은 온 가족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죠.
장언리, ‘책상의 표면’ (The Surface of the Table), 2006, Oil on canvas, 150 x 180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Barbora Gerny
장언리는 2000년대에 이렇게 일상 속 보잘것없는 사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양동이뿐 아니라 텅 빈 욕조, 바닥에 멈춰 있는 공, 뚜껑을 쩍 벌린 상자, 리드미컬하게 엉킨 고무호스 등이 그림 속 소재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장언리, 하우저 앤드 워스 뉴욕 개인전 전시 전경, 2011년.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Thomas Müller.
그 시선과 함께 우리는 양동이의 깊은 구멍이 열어 주는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잿빛 물이 가득 찼다 비워지기를 반복하며 양동이가 지나왔을 일상의 많은 시간들. 그 시간을 분주히 살아가며 삶의 희망을 다져 나갔을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의 모습을….
장언리, 정육점 (1) (Meat Market (1)), 1997년, Oil on canvas, 169.7 x 149.7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1993년에 그린 ‘쇠고기 두 근(Two Jin of Beef)’처럼 거칠고 적나라한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쇠처럼 굳은 얼굴을 한 푸주한의 앞에 놓인 고깃덩어리와 그의 팔이 마치 같은 고기인 듯 비슷한 질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요. 이 무렵 작가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도시 상하이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죠.
장언리, 정육점 (2) (Meat Market (2)), 1997년, Oil on canvas, 169.9 x 149.8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빽빽한 빌딩 숲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는 이 무렵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림에서 사람이 사라졌고, 그 대신 그들의 흔적이 남은 사물들이 캔버스를 대신했죠.
장언리, 멜론 농부들, 2023, Oil on canvas, 200 x 180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장언리, 멀리서 온 손님(A Guest from afar), 2023, Oil on canvas, 200 x 400 cm, ©️ Zhang Enli.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흥미로운 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작업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흔적’과 ‘저 너머’의 무언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50년 동안 발전해 온 내 생각은, 내가 보는 시각과 그에 얽힌 나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계가 중요한 사건이나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로 만들어진다.”
장언리. 하우저 앤 워스 제공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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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