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움’ 펴낸 정병모 민화학교장 “풍속 묘사 넘어선 유머-풍자 일품”
단원 김홍도의 대표 풍속화 중 하나인 ‘씨름’. 경기 중인 씨름꾼들에게 집중하는 대부분의 관람객과 달리 달콤한 엿을 파는 엿장수에게 시선이 팔린 어린아이(점선)를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상투를 튼 두 사람이 씨름판에서 숨 가쁜 대결을 하고 있다. 씨름꾼들을 둘러싼 관람객들이 모두 경기에 집중하는 가운데, 두 사람만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 한 사람은 관람객을 살피는 엿장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엿장수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다. 엿을 팔아야 하는 엿장수가 관람객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꿀처럼 단 엿에만 한눈을 파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의외의 웃음을 자아낸다.
신간은 스토리텔러로서의 김홍도의 창의성과 휴머니즘에 집중한다. 단원풍속화첩의 또 다른 그림 ‘길쌈’의 경우 베를 짜는 여인만 보면 평범한 풍속화처럼 보이지만, 등 뒤에 손자를 업고 서 있는 시어머니의 표정에 집중하면 한 편의 ‘휴먼 드라마’를 읽을 수 있다. 한마디 할 기세로 못마땅한 얼굴을 한 시어머니는 해맑은 표정의 손자와 대조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신간의 책 표지로 사용된 ‘염불서승’ 역시 평범하지 않다. 연화대에 앉은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척추뼈의 일종인 청량골(淸凉骨)을 바짝 세우면 드러나는 두 줄기의 긴장된 목선을 잡아냈다. 긴장된 목덜미와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이 어우러져 우주적인 숭고함이 느껴진다. 보일락 말락 한 작은 점으로 그린 오른쪽 눈썹 끝은 고뇌하는 스님의 앞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신간에선 왕의 어진부터 촌부의 얼굴까지 두루 그린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풍부히 맛볼 수 있다. 정 교장은 “김홍도는 무엇을 그려도 색다르게 표현한 화가로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주목했다”며 “기존 유교의 도덕적 측면에 주목한 그림과 달리 늘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어간 위인”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