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후보 경선 유세 발언 파장 동맹국에 “체납자 보호하지 않겠다” 재선시 안보우산 철회 가능성 시사 NYT “6·25 부른 애치슨 라인 연상”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이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집권 당시 나토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0%의 국방비를 지출하도록 압박했던 그가 재집권하면 방위비를 이유로 동맹에 대한 안보우산을 철회할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 도중 과거 한 나토 회원국 지도자가 자신에게 “우리가 돈(방위비)을 내지 않더라도 러시아로부터 공격받으면 우리를 보호하겠는가”라고 물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에 자신은 “당신이 체납자(delinquent)라면, 보호하지 않겠다(I would not protect you). 오히려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독려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또 “청구서에 나온 대금을 납부하라(You got to pay your bill)”고 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부유한 동맹국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는다며 거센 불만을 표했다. 그는 한국과 독일에 각각 ‘미국을 벗겨먹으려 한다(rip off)’, ‘부자 나라가 방위비를 그렇게 적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 및 주독미군 철수 등도 거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간 동맹을 지켜온 미국의 안보우산이 사실상 종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1950년 딘 애치슨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뺀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후 5개월 만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며 세계가 미국의 의지를 신뢰하지 않으면 6·25전쟁 같은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평했다.
트럼프 “동맹이라도 돈 안내면 체납자”… 나토 “모두의 안보 위협”
트럼프 “돈 안내면 침공 독려” 논란
동맹국에 GDP의 2% 국방비 요구… 미달땐 안보우산 철회 가능성 시사
유럽 “안보 가지고 장난하나” 발칵
韓, 美와 방위비분담 협상 조기착수
동맹국에 GDP의 2% 국방비 요구… 미달땐 안보우산 철회 가능성 시사
유럽 “안보 가지고 장난하나” 발칵
韓, 美와 방위비분담 협상 조기착수
1949년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헌장 5조’ 내용이다. 31개 나토 회원국 중 단 한 국가만 공격을 받아도 나머지 30개국이 군사력을 결집해 공동 반격에 나선다는 것이 골자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간 중립을 유지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 것 또한 이 집단 안보우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75년간 유지되던 나토 헌장 5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집권 당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토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각 회원국에 자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강하게 압박했던 그는 10일(현지 시간) “재집권하면 돈을 내지 않는 동맹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부추기는 일마저 불사하겠다”는 취지의 위협을 가했다.
● 트럼프 “동맹이라도 돈 안 내면 체납자”
미국은 나토 설립 후 대부분의 재정을 책임졌다. 나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기준 나토 국방 지출의 71.7%를 미국이 부담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 회원국에 ‘GDP의 2%’ 기준을 직접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국제 통계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1개 나토 회원국에서 GDP 대비 2%를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는 폴란드(3.9%), 미국(3.49%), 그리스(3.01%) 등 총 11개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기준에 미달하는 독일에 대해 “부자 나라가 왜 이리 돈을 조금 내냐”며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주독미군 3만6000명 중 1만2000명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체납자’로 취급했다. 미국에 내야 할 돈을 빚졌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11월 대선에서 재집권하면 국방비 지출이 2.0%에 미달하는 상당수 나토 회원국이 미국의 거센 증액 요구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또한 방위비 증액과 주한미군 조정을 연계한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그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올해 중 조기 착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SMA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서 한국 정부가 부담할 금액을 규정하는 협정으로, 11차 SMA는 2025년까지 적용된다.
● 바이든-유럽 전체 부글부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선에서 재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일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폴란드, 발트해 국가도 공격해도 된다는 청신호”라며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폭력배(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편을 들면 안 된다”고 했다.전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과 유럽을 약화시키고 미국과 유럽 군인을 더 큰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나토는 미 대통령 기분에 따라 작동하는 군사동맹일 수 없다”고 말했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대해 “동맹의 안보를 가지고 장난칠 핑계가 될 수 없다”며 분노했다. 피터 리케츠 전 영국 상원의원은 골프 애호가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미를 들어 “나토는 GDP의 2%란 돈을 내면 방위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트리클럽’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