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다큐멘터리 ‘리딤팀: 다시 드림팀으로’
1992년, 심야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미국 대학 농구 8강전을 보게 됐다. 못 알아듣는 영어 방송인데도 본 이유는 듀크대 감독의 외모가 내 취향이어서였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듀크대를 응원했는데 상대인 켄터키대도 만만치 않았다. 연장전까지 끌며 1점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막판에 켄터키대가 2점 슛을 성공시켜 1점을 앞질렀다. 시간상 마지막 골 찬스였기에 켄터키대는 축포를 터뜨렸다. 이때 잘생긴 듀크대 감독이 타임아웃을 외쳤다. 종료 2.1초를 남긴 상태. 저 짧은 순간에 뭘 어쩌겠다고 작전을 짤까? 외모에 홀려 어려운 이름인 ‘마이크 시셰프스키’도 외웠건만, 이런 나도 혀를 찼다.
이정향 영화감독
1992년의 그날, 듀크대는 2.1초 안에 한 골을 더 넣어 1점 차로 승리한다. 내 눈을 의심했다. 반대편 골대 옆에서 길게 던진 공을 4학년인 크리스천 레이트너가 점프로 받아내서는 한번 튀기고 골대로 던졌다. 공이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길게 울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로 들어가는 공을 축하하는 음악 같았다. 이때 깨달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3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 장면의 덕을 수없이 봤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여길 때마다 시셰프스키 명장이 알뜰히 써먹은 2.1초를 떠올리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쥐어짰고, 그 결과 언제나 그에게 감사했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