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계대전 격화 속 유출 수법 지능화 핵심기술 유출, 처벌 양형 기준 강화 시급 정부는 기업 보안 인프라 구축 지원해줘야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현재 지구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 중 우리가 소홀히 넘길 수 없는 강력한 전쟁이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총성을 울리는 비극의 환란이라면, 총성은 없으나 국가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불행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전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반도체 세계대전’이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과 안정적인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은 본격적인 상용화를 가능하게 했고, 반도체는 경제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점차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이 가시화되며 이른바 반도체 세계대전이 치열해진 것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고, 거대한 자국 시장과 자본을 앞세워 글로벌 업체들의 생산라인을 유치했다. 미국은 2019년부터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등 중국 주요 기업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막고 있다. 2022년 10월에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하였고, 12월에는 메모리 최대업체인 YMTC 등 중국 기업을 수출 통제 명단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 외국의 반도체 기술과 인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네덜란드 ASML의 ‘최종병기’ 극자외선 노광장비 기술이 중국 화웨이에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한국의 반도체 인력 및 기술을 빼가려는 중국 기업의 시도도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위해 연봉 3∼4배에 자녀의 국제학교까지 보장하는 인센티브 제공 조건으로 채용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인력을 모집하거나, 브로커를 통해 핵심 인력을 관리하고 포섭하기도 한다. 인수합병이나 기술이전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가장해 기술을 빼가는 방법도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팹리스(설계) 분야에서는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엔지니어를 고용해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져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핵심 반도체 세정 공정 기술이 유출되거나, 반도체 공장 전체가 통째로 복제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유출 수법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지능화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이와 같은 중대성을 직시하고 반도체 및 첨단 기술 유출 방지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첫째로,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실형을 산 사람은 매우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행 법령은 1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집행유예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처벌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 범죄 수사에서 처벌이 관대하다 보니 기술을 빼돌려 큰 이득을 챙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미국과 대만은 경제 산업 분야의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간주해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 한국도 국가 핵심 기술과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을 중범죄로 처벌하도록 관련 법이 엄격해져야 한다. 둘째로, 처벌 강화 같은 사후 대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기술 유출 방지책은 20년 전부터 있었지만, 기술 유출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기술 유출의 다수는 연봉 등 처우 문제에서 비롯된 이직 과정에서 발생하므로 핵심 기술 개발자들에 대해 합리적인 보상을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첨단 반도체 산업의 인재들에게는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국가대표라는 자긍심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또한 퇴직자의 재취업 일자리 및 창업 생태계를 개선해야 한다. 반도체의 업무 특성상 설계, 소재, 부품, 장비 등 분야별 환경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을 해 주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은 정밀한 보안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은 보안 인프라를 선진화해야 하고, 보안 인프라 구축이 어려운 중견·중소 기업에는 정책적인 지원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반도체 핵심 기술과 인력의 유출을 막지 못하면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는 패배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국가 경제의 미래도 없다. 정부와 국회, 기업이 함께 입체적인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