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역사왜곡 논란] ‘조선구마사’ 中소품 항의에 조기종방 ‘더크라운’ 논란일자 “작품 허구” 자막 “대중 역사인식에 영향… 철저 검증을”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한 장면. 충녕대군이 외국인 사제와 통역사에게 중국 전통 음식인 전병과 중국식 만두를 대접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SBS 제공
KBS ‘고려거란전쟁’뿐 아니라 최근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역사왜곡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다. 이 드라마에선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사제와 통역사에게 중국 전통음식인 월병과 중국식 만두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됐다.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지만 조선을 방문한 이들에게 중국 음식을 대접한다는 설정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 것. 제작진은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가미해 소품을 준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청자 항의가 쏟아지자 SBS는 방영 2회 만에 조기 종방을 결정했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지도 권고를 내며 “드라마의 허구성에 대해 철저히 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1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설강화’도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에게 쫓기던 남파 간첩(정해인 분)을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한 여대생(지수 분)이 구해준다는 이야기다. 간첩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안기부 직원이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된 점이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볼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이 자칫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사건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고 시청률이 3.9%까지 올랐지만 역사왜곡 논란 직후 1.7%까지 떨어졌다. 드라마가 조기 종방되지는 않았지만, 기업들이 광고와 제작 지원을 철회했다.
영화 ‘나폴레옹’의 한 장면. 나폴레옹이 기마 돌격에 앞장서는 장면은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소니픽처스 제공
국내 방송계에선 정통사극에 새로운 소재를 접목한 이른바 ‘퓨전 사극’이 최근 유행하면서 논란이 더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당시 격리된 장소에서 촬영할 수 있는 사극 제작이 늘면서 제대로 고증이 안 된 작품들도 방송 전파를 탈 수 있었다는 것. 한 드라마 작가는 “역사왜곡 논란이 과도해지면서 창작자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대중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범위 안에서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정통·퓨전 사극을 불문하고 대중문화콘텐츠는 대중의 역사 인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상상력이란 단어가 변명이 될 순 없다”며 “사료 검증이 철저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콘텐츠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