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언에 유럽 자강론 비상 폴란드 총리, 佛-獨 잇달아 방문… “유럽 국가들 정신 차려야 한다” 강조 트럼프는 ‘나토 방위비’ 또 거론… 일각선 “유럽 자체방어 10년 걸릴것”
獨퍼레이드 등장한 트럼프 인형과 나치 문양 성조기 12일(현지 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카니발 퍼레이드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모양으로 잘린 성조기를 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모형이 등장했다.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이 카니발에서는 세계적인 정치 문제 등을 풍자한다. 뒤셀도르프=AP 뉴시스
“유럽은 갈수록 현실화되는 위협(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과소평가하는 이들에게 ‘찬물 샤워’ 같은 행동을 취해야 한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1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독일 베를린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를 잇달아 만난 뒤 이같이 말했다. 동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을 받은 뒤 안보 불안이 크던 차에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임 당시 나토 탈퇴까지 거론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제기되자 유럽 국가들에 ‘정신 차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는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뒤 유럽 주요국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가 3국 협력체인 ‘바이마르 삼각동맹’ 부활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르게 유럽 자체 안보 역량 강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 “유럽, 1년 내 방산 역량 키워야”
바이마르 삼각동맹은 유럽의 두 강대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폴란드가 적극적인 모양새다. 투스크 총리는 유럽 국가들에도 “가능한 한 빨리, 향후 12개월 내 더 큰 방공 능력과 탄약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군사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을 촉구했다. 폴란드 정부 소식통도 로이터통신에 “유럽은 함께 행동해야 한다”며 “트럼프가 승리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답해야 하는 문제다.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안보 자강(自强)’은 비단 안보 불안에 쫓기는 폴란드만의 목소리는 아니다. 숄츠 총리는 “폴란드, 프랑스, 독일 간 협력은 유럽에 좋다”면서 유럽에 새로운 탄약 공장을 개설해 무기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유럽연합(EU)의 자체적인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유럽에서 나토를 보완하고 대서양 동맹의 기둥이 되는 안보 및 국방력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유럽, 방어에 10년 걸려” 회의론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도 또다시 나토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지금은 (나토 회원국에)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내가 없기에 그들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이건 틀렸다”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다음 달 12일 출간 예정인 CNN 안보전문기자 짐 슈토의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재집권하면) 나토를 탈퇴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목표치인 국내총생산(GDP) 2% 기준을 달성한 국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만 해도 29개 회원국 중 4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31개국 가운데 11개국으로 늘어났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며 올해는 절반 이상이 2%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무기가 바닥이 나 ‘안보 자강론’이 선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최대 방산업체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페르거 사장은 BBC에 “유럽이 완전히 방어할 준비를 갖추려면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유럽의 탄약고가 텅텅 비어 있다”고 했다. 나토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하려던 영국 항공모함 두 척이 잇따라 고장 나는 웃지 못할 사태도 벌어졌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