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운동권에 결단 요구 李, 김근태계 공천 보장 요청 거절 추엔 송파갑 권유, 추는 “다른 험지” 친문 등 컷오프 현실화땐 내홍 예상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5선 출신의 이종걸 전 의원. 뉴시스·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현역 3선인 인재근 의원(서울 도봉갑)을 비롯해 5선 출신의 이종걸 전 의원에게 불출마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험지 출마를 직접 권유한 것은 현역 의원 ‘컷오프’(공천 배제) 발표에 앞서 당내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물밑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드보이(OB) 등 중진급 인사들의 불출마 및 험지 출마 선언을 이끌어내 현역 컷오프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것.
하지만 친문(친문재인) 진영에선 “곧 불어닥칠 ‘친문 찍어내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반발하고 있어 하위 20% 평가자 통보와 현역 컷오프 발표가 본격화할 시 추가 탈당 등 극심한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李 인재근·추미애 만나 ‘결단’ 요구
1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 의원은 이 대표와 최근 만난 자리에서 22대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인 의원이 불출마 뜻을 밝히며 당내 일부 김근태계 운동권 인사들의 공천을 보장해 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 대표는 이를 거절하고 인 의원의 불출마 의사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인 의원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으로, 2011년 김 전 의장의 사망 후 지역구를 물려받아 19대부터 내리 3선을 이어왔다.
이 대표는 설 연휴 전 추 전 장관도 직접 만나 험지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추 전 장관에게 서울 송파갑 출마를 요청했으나 추 전 장관이 거절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추 전 장관 측 관계자는 “송파갑은 추 전 장관의 ‘체급’을 고려했을 때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며 “다만 다른 험지 출마 요구가 온다면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종걸 전 의원과 문학진 전 의원 등에게도 최근 직접 전화로 불출마를 권유했다. 5선 출신인 이 전 의원은 서울 종로에, 재선인 문 전 의원은 경기 광주 출마를 준비 중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의원과 문 전 의원 모두 2016년 이 대표 대선 경선 때부터 연을 맺은 인사들"이라며 "측근들에게 먼저 선당후사 희생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 측은 "이 대표로부터 불출마 권유를 받은 바 없다"며 출마 강행 의지를 밝혔다. 문 전 의원 측 역시 불출마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현역 ‘컷오프’ 앞둔 명분 쌓기” 분석
이 대표가 이처럼 당 안팎 OB들에게 직접 “후배들을 위해 ‘용단’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고 나선 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및 친문 현역 컷오프 후폭풍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들의 결정이 추가 불출마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인 의원은 당내 운동권 대모이고, 추 전 장관도 문재인 정부 출신중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라며 “이들의 결정이 당내 여러 계파의 향후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4선 이인영 의원 등 운동권 중진을 비롯해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친문 인사들을 향한 당 지도부의 직간접적인 험지 출마 압박에 힘이 실리지 않겠냐는 것.
당 지도부 내에서는 금품 및 뇌물 수수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기소된 의원들이 컷오프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주까지는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권고 대상자를 상대로 한 설득 작업에 집중한 뒤 다음 주 초부터 컷오프 결과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